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가을은 남자들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주변에는 가을을 탄다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 누군가는 일상에서 떠나고 싶다고 하고, 누군가는 스멀스멀 들어오는 찬바람에 옆구리가 시리다는 말로 외로움을 대신하기도 한다. 가을은 화려한 단풍 속에 심연의 고독을 감추고 있는 두 얼굴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지난 9월, 춘천에서는 새로운 생활실험, 이름하여 리빙랩(Living lab)이 시작되었다. 공식적인 프로젝트명은 ‘시민정원을 활용한 공공하천관리’이지만, 우리는 ‘리틀 포레스트’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시작은 늘 그렇듯이, ‘잡초 가득한 공공하천의 유휴 부지를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가꾸어보면 우리 동네가 더 살만한 동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막상 행정안전부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행정상의 절차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돈이 안 되는 시민정원 사업에 누가 기꺼이 달려들 것인가? 시민실행팀을 구성할 수 있을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분양에 참여해 줄까? 라는 근본적인 과제들이 사업제안자 앞에 놓여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기우였다. 2주 가까이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고 사업설명회를 하면서 실행팀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단 이틀 동안 신청을 받았음에도 경쟁률이 2:1을 넘어섰다. 우리 실행팀은 급히 접수를 마감하고, 선착순으로 하천 유휴 부지를 시민들에게 성공적으로 분양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빠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점이다. 최종 선정된 50개팀(170명)의 참여자 면면을 보면, 아빠가 신청하고 함께 참여한 비율이 40%를 넘는다.

첫 삽을 뜨던 가을 주말 오후, 모래성 같이 쌓여 있던 흙을 화단에 부지런히 나르고, 아이들과 함께 화단을 정리하는 아빠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족정원의 팻말을 함께 만들고 꽃을 가꾸는 가정의 아빠는 외로울 새가 없으리라. 특히 공공하천의 자투리땅을 이렇게 멋지게 꾸미는 아빠인데! 땀 흘리는 아빠처럼 멋진 남자는 없다. 더구나 가족과 함께.

리빙랩은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사업이 아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들어왔던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시되는 살아있는 사업이다. 지난 한 달간 석사천에는 50개의 기발하고 멋진 시민정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결과보다 ‘우리의 화단’을 어떻게 꾸밀지, 어떤 꽃을 심을지, 누가 물을 주고 관리할지 그리고 이곳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고 놀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아빠와 아이.
‘리틀 포레스트’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아빠와 아이.

이제 하천을 다시 정비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매주 주말, 시민정원에 나와서 아이들과 화단을 가꾸고, 이웃 화단의 시든 꽃에도 물을 주고, 하천의 쓰레기를 처음 줍게 되었다는 한 평범한 아빠의 수줍은 고백을 듣자니 그동안의 수고가 말끔히 사라진다. 실행팀 내부에서 묵묵히 땀 흘려준 멋진 한 명의 아빠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춘천의 아빠들을 더 자주, 더 많이 석사천으로 불러내야겠다. 가족정책, 뭐 특별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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