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노란 카페에서 《민들레》를 손에 들고 사람들이 이야기 밤을 맞는다. 늘 오는 사람도, 처음 오는 사람도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이 적잖은 친근함을 만들어준다. 따끈하게 도착한 119호 《민들레》의 기획 주제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된 ‘페미니즘’이지만, 그 단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쉽지 않던 참에 남자 둘, 여자 넷의 페미니즘 이야기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매달 모임에 함께하는 여중생 독자에게도 이번 호는 할 말이 많은 주제였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있는데, 친구들이 너무 몰라요. 오히려 저한테 뭐라고 해서 화나고 답답할 때가 있어요”라며 하소연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했더니 “학교에서도 페미니즘을 배워야 해요!”라며 목소리가 커진다. 듣고 있던 어른들은 알게 모르게 미안함이 반, 대견함이 반이라고 해야 할까? ‘학교 현장의 교육과정에서 페미니즘이 빠져있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기라도 한 것처럼 후끈했다.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경험담들이 이어진다. 추석 전날이 제사라 제사상을 전날 밤에 차리고, 다음날 아침은 차례상을 차려왔다는, 제사를 지내러 오는 시가 친척들의 상습적인 지각이 늘 편치 않았음에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는 제보(?)에 듣는 이들이 발끈하기도 했다. 또 친인척들이 함께 모여도 손자와 손녀의 역할을 나눠 요구하는 집안 어른들의 고집스런 양식이 여자아이들에게 부당한 경험으로 남았다는 ‘상처’도 있었다. 당당한 손녀들이 의사 표현을 힘주어 말하기만 해도, ‘여자가, 여자니까, 여자들이 ~하는 거야’라는 주문과 충돌이 생기는 것은 다반사가 된단다. 그 사이에 낀 ‘엄마’와 ‘여자’, ‘며느리’를 한 몸에 장착한 이들은 과연 어떤 입장이어야 현명한 걸까?

함께 모였던 두 남성들에게 흥미진진한 입장차를 내심 기대했건만, 이들은 이미 ‘아빠 페미’ 수준이라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웠다. 육아휴직을 아내와 번갈아 하고, 시가(본가)로부터의 대소사에 유연한 파트너가 되어주는 젊은 부부들의 일상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 했다. 제사를 지낼 때 시리얼을 놓는다는 것과 한 번은 날짜를 깜빡해서 그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챙겼다는 에피소드를 나누면서 가부장적 집안 며느리들은 속 시원히 ‘빵’터지기도 했다. 웃기도, 화나기도 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을 다듬어보며 이번 호 ‘민들레’ 기획 글 중 고2 남학생이 기고한 ‘십대 남자들의 말’이 되새겨진다. 고등학교 남학생들 사이에서 또래문화로 여겨지는 여성비하발언이나, 성적 저급한 말들이 우리 학생들에겐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유머처럼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언어가 거슬려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소외되는 상황으로 이어져 불편해도 동조하게 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또 영향력 있는 인터넷 영상매체 진행자들(BJ 또는 스트리머)이 사용하는 자극적인 언어는 곧 청소년들의 유행어가 된다. 이런 구조와 환경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18세의 남학생은 이런 충고(?)를 한다. 청소년들이 비판적 태도가 결여된 문제는 그런 비판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교육의 문제에 있다고. 왜곡된 페미니즘으로 인한 ‘여성혐오’, ‘남성혐오’로 적대시되는 상황들도 결국은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청소년기의 배움이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여성, 학생, 노동, 장애인인권 등 인권교육을 통해 누구나 존중받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하는 이야기가 어른들을 향한 ‘S.O.S.’로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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