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슬로우 시티(Slow city) ‘치앙라이’에 가다
[기획] 슬로우 시티(Slow city) ‘치앙라이’에 가다
  • 전흥우 편집국장
  • 승인 2018.11.08 2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편 주산지에서 커피와 녹차의 대명사로 거듭나

아주 색다른 태국여행을 다녀왔다. 지역의 젊은 IT업체인 알플레이와 제휴해 추진되는 여행사업의 일환이었다. 빼곡한 일정으로 관광지를 찍고 오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돌아보는 슬로우(slow) 여행이 이번 여행기획의 주된 취지다. 그런 점에서 태국 치앙라이는 안성맞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나무 숲 아래서 재배되고 있는 도이퉁 리체마을의 아라비카 커피.
소나무 숲 아래서 재배되고 있는 도이퉁 리체마을의 아라비카 커피.

이번 치앙라이 여행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도이퉁의 커피와 도이매살롱의 녹차였다. 치앙라이에서도 북쪽 산악지대를 이루는 곳들로 모두 해발 1천300m가 넘는다. 태국어로 ‘도이’는 ‘산’을 뜻한다.

도이퉁 지역은 2년 전 죽은 푸미폰 국왕의 모후인 스리나가린드라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그녀는 30여년 전 이곳을 방문해 아편과 화전으로 황폐해진 산을 목격하고 ‘매파루앙 재단(Mae fah luang foundation)’을 설립해 ‘도이퉁 개발계획’에 착수했다. 남미에서 수입한 아라비카 커피와 견과류인 마카다미아 등을 보급하고, 고급 패션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도이퉁을 태국을 대표하는 커피와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요크커피 대표 조셉 씨.
요크커피 대표 조셉 씨.

내가 간 커피농장은 아카족이 사는 리체마을이었다. 농장이라는 말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울창한 소나무 밭 아래 커피나무들이 자생하듯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약도 비료도 필요 없는 그야말로 천연 유기농 커피였다. 아직은 수확기가 아니라서 커피체리의 빛깔이 대부분 초록이었지만 개중에는 빨갛게 익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조셉(이영기·56) 씨가 관할하는 요크커피의 주산지다. 조셉 씨는 선교사로 뉴질랜드에서 살다가 10여년 전 이곳으로 이주해 원주민들과 함께 커피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소나무 사이 오솔길을 걷는 맛도 쏠쏠했다. 이곳에서 리체마을까지 걸어간다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오전에 방문해 피톤치드 향으로 충만한 커피나무 숲을 트레킹한 다음 리체마을 원주민이 손수 준비한 집밥을 마주했다. 커다란 나무통에 찐 흰 쌀밥에 닭볶음요리를 갖가지 산나물에 싸서 먹었다. 고수의 강한 향은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음식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리체마을로 올라가기 전 왓파랏 사원에 잠시 들렀다. 도이퉁에서는 어디를 가나 운무에 싸인 산악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리체마을 근처의 갈림길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미얀마와 접경을 이루는 국경지대를 만나게 된다. 초소를 지키는 병사가 수줍게 맞이한다. 말이 국경이지 대나무로 얼기설기 울타리를 쳐놓은 것이 철조망으로 중무장한 DMZ에 비하면 애들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산악지대로 연결돼 있으니 국경이라지만 태국이나 미얀마나 구별이 가질 않는다. 이곳을 지나 파히마을에 들렀다. 같은 아카족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인데, 150여호나 되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이곳은 이미 방송에 많이 알려져 주말이면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따라 원주민들도 상술에 눈을 떠 카페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도이퉁에서 방문한 또 다른 곳은 바로 스리나가린드라 대비가 조성한 매파루앙정원이다. ‘매파루앙’·‘매살롱’·‘매사이’처럼 지명에 ‘매’가 들어간 곳이 많은데, 한자로 ‘母’를 뜻한다고 하니 왕의 어머니와 관련성을 나타내는 말일 것 같다. 매파루앙정원에는 대비가 살던 로열빌라가 있고 잘 조성된 넓은 정원이 있다. 정원 한쪽에는 ‘Tree Top Walk’가 설치돼 있다. 말하자면 나무 위에 조성된 출렁다리다.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 위로 설치된 출렁다리를 스릴을 즐기며 걷는 건 색다른 묘미였다.

도이퉁이 커피의 대명사라면, 도이매살롱은 녹차의 대명사다. 드넓게 펼쳐진 녹색의 물결이 그대로 눈으로 들어와 가슴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녹차밭 입구에 태국의 대표적인 차 회사인 ‘101 TEA’의 홍보관이 있어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을 대표하는 차는 우롱차다. 우롱차지만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이곳 관리인은 연신 이것저것 차를 타주며 지치지도 않고 친절한 설명을 이어간다. 도이매살롱은 중국인 비중이 높다. 1949년 마오쩌둥에 밀린 장제스의 잔당 4천여 명이 아편을 재배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다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녹차밭에 가기 전 들른 ‘운남면교가’라는 음식점에서 쌀국수와 만두를 먹었는데, 역시 중국식이어서 그런지 그나마 입에 잘 맞았다. 닭을 끓여 육수를 낸 국물 맛도 좋았지만, 만두는 너무 맛있어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치앙라이 시내투어는 블루템플, 화이트템플, 싱아파크, 토요마켓과 야시장 등을 주로 봤다. 블루템플과 화이트템플(왓롱쿤)은 찰럼차이 꼬싯삐빳이라는 예술가가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 현대식 사원으로, 사원이라기보다는 관광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 위압적이지만 예술적인 면에서는 먼저 지은 화이트템플이 더 정교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싱아파크의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무려 98만평에 이른다고 하니 모두 둘러보는 건 애당초 쉽지 않은 일이라 드넓게 펼쳐진 녹차밭을 바라보며 공원 내 레스토랑에서 얼음 생맥주를 마시고 나왔다. ‘싱아’란 전설상의 동물로 사자와 비슷하다.

빨갛게 익은 커피체리.
빨갛게 익은 커피체리.
왓파랏 사원에서 만난 아카족 원주민들.
왓파랏 사원에서 만난 아카족 원주민들.
매파루앙정원의 트리탑워크.
매파루앙정원의 트리탑워크.
도이매살롱의 ‘101 Tea’ 녹차밭 전경.
도이매살롱의 ‘101 Tea’ 녹차밭 전경.
치앙라이 야시장 전경.
치앙라이 야시장 전경.

치앙라이의 토요마켓과 야시장 또한 규모면에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듯하다. 야시장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토요일 밤마다 열린다는 토요마켓을 찾았다. 늘어선 노점을 다 돌려면 8km나 되는 거대시장이다. 한쪽 광장에서는 축제를 즐긴다. 거리낌 없이 군무를 추며 축제를 즐기는 표정들이 하나같이 행복한 모습이었다.

전흥우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