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마실 - 북산면 추곡리] 인생의 가을 문턱을 닮은 추곡 …
[스물일곱 번째 마실 - 북산면 추곡리] 인생의 가을 문턱을 닮은 추곡 …
  • 김예진 시민기자
  • 승인 201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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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낚시터
추곡낚시터

가을의 문턱에서 김화존(80) 씨를 만났다.

추곡에 사는 김씨는 ‘춘천사람들’의 조합원이고, ‘춘사톡톡’이란 독서동아리에서 매월 만나는 친구다. 식탁에는 이웃이 주었다는 복숭아가 정갈하게 놓였고, 《허형식 장군》이란 실록소설이 눈에 띄었다. 찾아온 젊은 친구에게 들꽃도감을 선물로 주었다. 해남이 고향인 어르신은 30대에 고향을 떠났다. 돈벌이를 위해 도시에서 살다 50대에 산골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가장 적게 사는 마을이 어딘가 찾다가 품걸리, 청평리에 살다 아내가 20년을 앓고 난 후 세상을 떠나자 추곡에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저는 쉰여섯에 다 내려놓았어요. 있으면 나누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을 것이 없으면 그냥 굶으면 되지요. 이제는 그렇게 가도 될 나이예요. 저는 늘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이걸 지키는 마음창고 열쇠 네 개가 있어요. 하나는 내 길 가는 열쇠로 좌고우면 않고, 둘은 남과 견주지 않고, 셋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넷은 있는 걸 족한 줄 아는 감사함입니다.”

늘 선한 용기를 주는 분이다. 어리석어서 부끄러운 짓을 반복하고 상실감이 들 때에는 산골에서 고요히 책을 읽고 텃밭을 돌보는 모습을 떠올리며 귀한 말씀 잊지 않으리라.

추곡리를 함께 돌아보는 동안 어르신은 이웃들에게 나를 친구라 소개했다.

수문장처럼 일본잎갈나무가 죽죽 늘어선 진입로에 빨간 우체통이 있는 김영자(57) 씨네를 들렀다. 추곡2리에서 가장 높은 자락에 있는 집이다. 마당에는 국화, 천일홍 만발하고 산 아래 작은 연못도 있었다. 건축업을 하는 영자 씨 남편이 직접 이 집을 지었다. 야외테이블에는 영자씨가 만든 조각보가 깔려있었다. 영자 씨는 바로 아래 집의 아저씨를 불렀다.

“저는 늘 향수병에 젖어 있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미국에서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곳에 들어왔어요. 열세 살에 부모님 따라 이민을 갔다 20년 전 우연히 이곳에 터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이 땅은 정리하기가 싫었어요. 캘리포니아의 아주 삭막한 곳에 살다보니 이곳이 그리운 거예요. 이제 살만하고 아직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니 아내는 아직 미국에 있어요. 가끔 나와서 한 달쯤 지내다 가는데, 곧 다 들어와야죠. 미국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예의바르지요. 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정(情)같은 끈끈함이 없어요. 돈 한 푼 없이 떠난 미국생활은 참으로 힘들었죠. 사막지역의 척박한 땅에서 살았는데 이곳의 향기로운 땅은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좋아요. 넓지는 않아도 저는 이곳에서의 삶이 아주 행복합니다.”

영자 씨네 집에 모인 이웃
영자 씨네 집에 모인 이웃

실내인테리어를 했던 영수 씨는 집을 고치고 있던 참이었다. 영자 씨는 이곳에 들어온 지 3년차다. 영수 씨네와 영자 씨네는 이 마을에 가장 최근에 정착한 이방인으로 동갑내기이자 하는 일도 비슷해서 서로 마음도 잘 통한다.

“우리가 마지막 집인데 산길이 좁고 위험해서 여기 가로등 하나만 달아주면 좋겠어요. 겨울에 눈이 한번 내리면 봄까지 눈이 안 녹아서 너무 불편해요. 살짝 녹아서 얼어붙으면 빙판이 되어 부지런히 비질을 해야만 하는데 우리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런 불편함만 아니라면 이곳에 들어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요. 마음이 부자지요. 누구든 내 손을 잡으면 끝까지 내가 손을 놓지 않아요. 몸을 부지런히 놀려야 하고 일은 많아도 이렇게 남은 인생을 보내려고 합니다.”

시원시원하고 호방한 영자 씨는 말하는 사이에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영수 씨를 따라가는 반려견의 뒤태도 흐뭇하다.

내려오는 길에 땅콩을 캐는 주민을 만났다.

“부창고개 넘어 스무나무재에 청평국민학교가 있었어요. 소양댐 공사를 시작하자 4학년까지 다니다가 추곡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지요. 중학교는 다니기 어려워서 젊어서 건축 일을 좀 하다가 고향에서 내내 농사만 지었어요. 산골에서의 삶이란 게 한해 농사짓고 겨울이면 떨어지고 봄 되면 또 농사짓고 그런 거죠. 도시에서 버는 돈의 개념과는 달라요. 그저 먹고 살면 그만인 거죠. 옛날에는 강을 따라 양구로 가거나 부창고개 넘고 스무나무재를 지나 수구동 검문소가 있었고 청평사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어요. 거기쯤에 학교가 있었고 배치고개를 넘어 간척을 거쳐 샘밭으로 나갔어요. 지금은 다 물에 잠겼죠. 10리가 좀 못되는 거리를 걸어서 학교를 다녔고, 짚으로 만든 망태에 곡식을 내다 샘밭장에 팔고, 생선을 사들고 오기도 했죠.”

고향에서 살아가는 오부섭(70) 씨
고향에서 살아가는 오부섭(70) 씨

아내가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해주었다는 오부섭(70) 씨는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4천 평 농사 중 대부분은 고추를 심고 오늘 수학하는 땅콩은 로컬푸드 코너에 내다팔 계획이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는 세상이라는 그의 말에 좋은 세상을 사는 나는 또 부끄럽다.

추곡2리 마을회관 앞에서 녹두 꼬투리를 따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곁에서 떠나지 않는 고양이는 아기고양이 같아 보였다.

“한시도 안 떨어지고 따라다녀서 아주 성가셔 죽겠어요. 2년 전쯤 마루 밑에 새끼 세 마리가 들어왔는데 어미도 없고 측은해 보여 밥을 주고는 했어요. 어느 날 둘은 사라지고 이 녀석만 남았는데 유독 작아요.”

고양이와 사는 지영순(90) 할머니
고양이와 사는 지영순(90) 할머니

지영순(90) 할머니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집의 마당에는 고추가 널린 채반과 대추 한줌이 가을 햇살을 담뿍 받아들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춘천의 집을 다 정리하고 60대에 이 마을에 들어왔다. 일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잘못했나 보다’라며 웃는 모습은 회한이 아니라 반어적으로 들렸다. 그래서 귀도 눈도 밝고 거동에 불편함이 없이 건강해 보인다. 말을 잘 못하는 앞집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는데, 이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었다.

회관 옆 오래된 마을 창고의 문은 녹이 슬었어도 여전히 사용 중이다.

추곡2리를 나와 낚시터로 향했다. 늘 차로 지나며 보기만 했던 낚시터에는 차도 배도 사람도 많았다. 하얗게 핀 억새와 호수의 오후 햇살이 기분 좋다. 물은 아주 맑았다. 고무보트에 텐트를 씌운 낚싯배들이 점점이 떠 풍경에 이야기를 얹혀주는 듯했다. 마침 고무보트에 장비를 조립하는 이를 만났다. 낯선 세계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립과정을 지켜보며 질문을 쏟아내는데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소양호는 전국에서 최고지요. 광활하고 맑아서 자주 찾던 곳이었는데, 서울에서 제법 큰 사업도 했다가 어려워지고 우연히 춘천에서 살게 된 거죠. 3년만 살자 했는데 12년째 살고 있어요. 춘천사람들이 참 좋아요. 작은 세탁소 하나 운영하며 쉬는 날엔 늘 혼자 낚시를 와요. 친구들과 술 마시고 어울리는 일보다 혼자 낚싯대를 들고 나서는 게 행복했어요. 전국 어디고 안 가본데 없고 남도 섬들도 다 가봤죠. 보트장비가 8만원 할 때부터 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5백만 원쯤 합니다. 50년간 낚시를 하며 한때는 낚시채널이며 잡지에 꽤나 얼굴이 알려졌었죠.”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배운 정관섭(72) 씨는 50년째 유일한 취미가 낚시다. 홀로 외로울 것 같은데, 때로는 물고기와 대화를 하며 찌에만 몰두하다 보면 세상시름은 사라지고 무아지경에 들게 된다고 했다. 어렵지만 노년에 정착한 춘천에서 그저 밥만 먹고 살아도 아무런 불편함도 없고 만족하며 산다. “행복이란 이런 거야”라며 일러준다.

추곡 약수터로 향할 때는 해가 산에 가까웠다. 약수터 주변은 많이 변해 있었다. 수인터널이 생기며 양구 가는 길이 좋아지면서 옛길에 있던 약수터는 찾는 이가 드물다. 10개 정도 있던 시골집 정취의 음식점은 다 사라지고 이제는 두 집만이 시에서 지어준 창고형 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차장과 주변경관이 정돈되어 깔끔해진 맛은 있지만 흙집의 아늑함은 없었다.

사명산 초입 어느 오두막
사명산 초입 어느 오두막

사명산 가는 초입, 작은 개울 옆 아름드리 은행나무 아래 낡고 낮은 오두막에서 밥 짓는 연기가 골짜기에 번졌다. 어느 노인의 저녁이 고요하다. 은행나무는 곧 찬란해질 테고 잎을 떨어뜨리겠지. 올려다보기만 했던 인생의 가을쯤에서 고개를 발아래로 숙이는 일이 많아져야겠다. 내 발 아래 얼마나 많은 씨앗들이 단 한 번의 기회를 기다리며 애쓰는지……. 그래서 피고 자라고 늙어가며 떨어진 마지막 잎이 얼마나 고운지…….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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