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마실 - 신북읍 유포리] 꼭두서니처럼 붉게, 때론 쪽빛처럼 푸르게 약동하는 마을
[스물여섯 번째 마실 - 신북읍 유포리] 꼭두서니처럼 붉게, 때론 쪽빛처럼 푸르게 약동하는 마을
  • 김예진 시민기자
  • 승인 2018.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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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 아침못 (조연저수지).
유포리 아침못 (조연저수지).

버들개는 유포리의 옛이름이다. 냇가에 버들이 많아 버들 갯가를 의미하는 유포(柳浦)라 했다. 북으로는 배후령을 이고 동으로 마적산이 길게 누워 유포리의 3분의 2가 산지다. 유포리의 중심에는 아침못(조연저수지)이 있으며 그 주변은 볕이 잘 드는 들녘이다.

발산리의 삼한골과 배후령의 무지골 계곡이 아침못으로 흘러드는데, 욕심 많고 못된 부자가 스님에게 능욕을 보이자 폭우가 며칠 동안 내려 집터는 커다란 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아침못 저수지는 유포리와 산천리, 천전리의 농부들에게 젖줄이다.

“전에는 둑도 그리 높지 않아서 둑방에서 낚시를 하면 제법 큰 붕어도 많이 잡히고 배스도 많이 잡았죠. 지금도 더러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언젠가 가뭄이 어찌나 심하던지 저수지 바닥이 거북등처럼 짝짝 갈라져서 물고기가 떼로 죽어있던 적도 있었죠. 농사꾼은 하늘만 쳐다보는 거죠. 그래서 마을에서는 춘천시에 건의를 해 2015년 소양댐 물을 끌어오는 공사를 했어요. 그리고는 사정이 많이 나아졌어요.”

인근에서 과수 농사를 한다는 농부는 가던 걸음을 바삐 옮겼다. 아침못 둑길 끝으로 나지막한 숲이 있지만 군부대 철책에 막혀 숲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빛바랜 풀들이 가을볕에 나긋나긋해지고 이제 막 갈대는 피기 시작했다. 아침못 둘레길을 만들어 유포리를 찾는 사람들과 제방에서 바라보는 들녘과 호젓한 아침못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수지를 나와 마을길을 돌다보니 잘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유포리 615-15번지에 있는 260년 된 소나무는 2003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보호수 옆으로는 풀빛천연염색연구소가 있다. 가을밤하늘 빛이 이러할까? 짙푸른 먼 바다의 빛이 이러할까? 파란 하늘 아래 쪽 염색을 한 원단과 스카프가 마음을 흔들어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유상렬 씨는 중학교 시절 우연히 본 책에서 상서롭고 신비한 빛깔이라 표현된 구절이 오래도록 궁금했던 차에 만난 쪽빛에 매료되어 30여년을 쪽물에 손을 담갔다. 대문도 없이 열린 마당의 빨랫줄에 염색한 원단을 널고 있었다.

풀빛천연염색연구소 염색장 유상렬 씨가 쪽염색후 잿물을 빼서 말리고 있다.
풀빛천연염색연구소 염색장 유상렬 씨가 쪽염색후 잿물을 빼서 말리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자료를 찾기 어려웠어요. 어렵사리 90년대 초에 쪽 염색 관련 논문을 처음 보게 되었죠. 염색도 힘들지만 잿물을 빼는 과정이 번거롭고도 중요한 일이예요. 요즘은 쪽 분말을 이용해서 쪽 염을 쉽게 하지만 저는 전통방법으로 염색을 합니다. 쪽 농사를 짓고 거두어 항아리에서 발효시키고 저장하는 그 모든 과정이 다 어렵지요. 염색 후에는 물에 담가 잿물을 빼고 널어 말리고 다시 반복하기를 여러 번 해야 온전한 색을 얻을 수 있어요. 예전에는 체험학습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출강을 하거나 전통 복식을 재현하는 침선장이나 고급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받아 염색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다른 천연염색은 견뢰도(굳고 단단한 정도)가 좋지 않아 주로 쪽 염색을 하죠.”

유포리가 고향인 염색 장인은 볕이 잘 드는 유포리의 들녘이 방문객에게도 편안함을 선사한다고 했다. 파란하늘을 보며 가르마 같은 유포리 노란 들길을 걸으면 두 팔이 저절로 벌어지고 농익은 빨간 사과밭을 지나니 저 사과를 누구에게라도 선물로 나누고 싶어졌다.

유포리는 아마도 유포리막국수가 가장 유명하지 않나 싶다. 근처에는 2군단 막국수집도 있지만 유포리막국수는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이집 시어머니가 기골이 장대했어요. 소양댐을 지을 때 남자들 하는 일 다 할 정도로 일도 잘해서 십장도 했어요. 나도 그 시어머니 따라서 댐 건설현장에서 일했지. 그땐 이 동네 사람들이 여자고 남자고 가릴 것 없이 댐 건설현장에서 일을 많이 했어. 댐이 완공되고는 이 막국수 집을 열었어. 첨엔 작은 초가집이었지.”

옛이야기를 전해 준 할머니는 유포리 막국수 집 마당에서 대추를 팔고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오랜 이웃이다. 지금은 며느리 홍순기 씨가 비법을 전수받아 45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유포리막국수는 한 여름에 먹는 살얼음 띄운 동치미 물막국수가 일품이다. 별다른 고명이 없이 특별히 만든 이 집만의 양념을 얹어 담백한 맛을 즐기는 것이다.

막국수집 근처 마을길에는 ‘차마실산’이라는 카페도 시골에서는 이색적이다. 작은 한옥을 개조한 카페의 주인장은 서울 출신이다. 친구들과  유포리에 우연히 들른 유혜란 씨는 그대로 눌러앉아 도자기를 빚던 손으로 대추차와 다식을 만들고 있다. 내온 간식은 주변 과수농가에서 생산된 과일을 식재료로 이용한 정성이 담뿍 담긴 건강한 먹을거리였다.

차마실산 카페 내부.
차마실산 카페 내부.

“전에는 사과 농장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복숭아 농가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대추차도 인기가 많지만 복숭아 샤벳도 맛있어요.”

일요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실내에는 좌식의자와 늘어뜨린 가리개와 소품들이 고풍스럽다. 마당 한편에는 구절초가 한 무더기 화사하고 바로 옆 정자에서도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들이 담장을 살짝 넘어 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았다. 사과꽃, 복사꽃 만발한 봄날의 기와집 정취를 그리며 한겨울 안방을 차지하고 내리는 눈을 감상하는 정취를 그리며 인근 낚시터로 발길을 돌렸다.

유포리 낚시터는 춘천시내 낚시꾼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매일 향어를 방류해 향어가 가장 많이 잡히고 붕어, 잉어, 장어도 더러 잡힌다고 한다. 20년쯤 된 낚시터는 현재 미모의 여주인장이 6년째 운영 중이다. 친절한 왕춘례(56) 씨는 음식솜씨도 좋아서 인근에서는 식사만 하러 들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손님이 드문 평일에는 손님에게 맡기고 자전거를 타거나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한다. 얼음이 어는 한겨울에는 두세 달 문을 닫고 여행을 떠난다. 그녀의 환한 미소와 느긋한 말씨가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력이 있었다.

유포리 낚시터 주인장.
유포리 낚시터 주인장.

“식당도 겸업하고 있고 밤낚시를 하는 손님을 위해 숙소는 무료예요. 어릴 적부터 장화 신고 다니는 게 좋았어요. 시내에서 모텔업도 해보고 사업도 했었는데 낚시터 앞 토지도 구입해서 집을 짓고 한적하고 공기 좋은 시골에 사니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야생화를 좋아해서 주변에 꽃도 심고 텃밭에 온갖 채소를 기르는 재미가 좋아요.”

향어를 낚아 올리는 소리에 건너편 좌대의 아저씨는 빈 낚싯대를 들어 올려 보였다. 낚싯대만 드리운 채 낚시에는 관심이 없는 듯 책을 읽는 이도 있었다. 다시 물결은 고요해졌다.

논이 많은 유포리에는 자투리 땅 한 자락 놀리는 일 없이 작물들이 빼곡했다. 마을 중심에 흐르는 지내천가로는 버드나무가 몇 그루 늘어서 있고 잡초들로 무성한 작은 개울에서는 동네 아저씨들이 족대질을 하고 있었다.

“예전엔 미꾸라지도 아주 많았죠. 버드나무도 버들치도 많았는데. 그래서 여기가 버들개라 불렸대요. 그래도 여기가 아직은 깨끗한 편이라 미꾸라지가 있어요.”

미꾸라지를 잡는 죽마고우 동네아저씨들.
미꾸라지를 잡는 죽마고우 동네아저씨들.

세 명의 동네 친구라는 아저씨들은 오동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죽마고우다. 한 명은 족대를 잡고 다른 두 명은 풀숲을 밟아 물고기를 몰거나, 미꾸라지를 잡아 고기 담을 통에 넣었다. 말이 없어도 손이 척척 맞았다. 아이들을 태운 미니버스가 아저씨들 옆으로 지나니 버스기사도 아이들도 고개를 내밀고 구경한다. 트럭에 농기구를 싣고 가던 화물트럭도 속도를 늦추더니 역시나 관심을 보인다. 어슬렁거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흐뭇하게 마을을 떠나 배후령고개로 향했다. 터널이 뚫려 이제는 지나는 차를 만나기 어려운 옛 고갯길에는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의 전용 길처럼 되어버렸다. 구불구불 고갯길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엔 모터사이클의 바퀴자국들이 까맣다. 배후령 힐클라임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마의구간이며 스릴 넘치는 구간이다. 올해도 1천300여대의 자전거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춘천의 불빛들이 켜질 무렵 배후령 고개에서 보는 황혼은 꼭두서니 빛깔처럼 곱다. 평범한 전원마을일 것 같았던 유포리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과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약동하는 마을이었다.

김예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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