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마실 - 남면 추곡리(秋谷里)] 구름이 천천히 지나는, 아늑한 저녁을 꿈꾸며…
[스물다섯 번째 마실 - 남면 추곡리(秋谷里)] 구름이 천천히 지나는, 아늑한 저녁을 꿈꾸며…
  • 김예진 시민기자
  • 승인 201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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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묘에서 바라본 추곡리 들녘.
공주묘에서 바라본 추곡리 들녘.

남면 추곡리는 북으로는 수동리, 서쪽의 후동리와 발산리, 남쪽으로는 산수리, 동쪽의 광판리와 행촌리에 닿아 있는 마을이다. 춘천에는 큰 강이나 호수를 접하지 않는 마을이 드문데, 추곡리는 6개 마을의 한가운데에 들어앉아 있다. 마치 러시아의 포개지는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포근한 춘천 속 또 하나의 작은 분지다. 이웃 마을을 넘나들던 옛길에 관심이 갔다. 물을 따라 가는 길이나 산을 넘던 고갯길을 유추해보며 지도를 하루 종일 들여다봤다.

추곡고개를 넘으면 수동리와 소주고개 길을 만나 창촌, 강촌으로 연결되며, 추곡리에서 발원한 실개천은 서남쪽으로 흘러 403번 도로를 곁에 두며 흐르다 발산리 충의대교 아래 홍천강과 합류한다. 추곡리 남쪽 삽다리 고갯마루에서 현재 공사 중인 대규모 애견테마파크 앞길은 광판 구은동1길과 만난다. 그 길에서 광판 임도를 넘어가면 산수1리다. 추곡1리 버스정류장에서 추곡천 실개천을 따라 오르면 행촌리로 가는 옛길 섬배고개다 불과 1km의 남짓 산길을 걸으면 행촌리 농가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자동차로 충효로를 따라 삽다리고개를 넘으면 행촌리 섬배마을이 나온다.

소주고갯길에서 추곡고갯길로 접어들자 산그림자로 그늘지고 한적한 길에 청량한 한기가 깔렸다. 고개를 내려와 마을 초입에 이르니 왼편으로 잣나무 숲길이 있었다. 보랏빛 쑥부쟁이, 개망초를 닮은 미국쑥부쟁이로 말간 가을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하늘빛이 가려진 음지에선 ‘쓰르쓰르르’, 가을매미 처량하다. 야트막한 동산을 10여분 오르면 하전응골로 내려갈 수 있지만 잡풀 하나 없는 싸늘하고 어두운 잣나무 숲길에 발을 들이기 싫어 되돌아 나와 추곡고개 길을 내려오니 추곡리 버스정류장 삼거리의 오래된 슬레이트 기와집이 반가웠다.

머루를 손질하는 제갈준옥 씨.
머루를 손질하는 제갈준옥 씨.

왼쪽 마을길은 정겹다. 길가에는 추억의 사루비아, 맨드라미, 백일홍이 흐드러지고 대추알도 꽃같이 물들고 있었다. 노란 들녘이 따사롭고 겨울준비를 마친 장작이 가득한 집 앞에는 도토리를 손질하는 할머니와 마당에서 머루주를 담는 할아버지의 손길은 분주했다.

“제가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해서 술을 많이 담가요. 저기 항아리는 청포도주, 그 아래는 앵두주, 이 머루도 이렇게 으깨서 아무것도 넣지 않고 단지에서 한 3년 숙성되면 술이 아니라 보약이에요.”

3년 된 청포도주를 맛보니 달달하고 술맛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소주보다 독해서 달다고 홀짝홀짝 마시다간 부지불식간에 취한다고 한다. 두 살 때 이곳으로 이사 온 제갈준옥(68세) 씨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50년 된 집에서 아들, 며느리, 손자 둘과 같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발산초등학교를 다녔지만 폐교가 되어 큰손자는 남산초등학교를 다닌다. 대문 안쪽에 주렁주렁 매달린 마늘다발, 수십여 개의 가지런한 장독대, 5남매에게 나누어줄 고구마는 굵은 씨알로만 담겨져 있었다. 대를 이은 대가족의 낡은 살림과 거두어들인 가을의 마당 풍경만으로도 아늑해지는 것이다. 마을길 한 가운데 백구 한 마리 드러누워 늘어진다.

이장네 집이라 일러준 곳에는 아무렇지 않듯, 혹은 일부러 줄을 세우듯, 심어둔 꽃들이 대문도 없이 훤히 열려 있다. 마당 앞에서 아무리 사람을 찾아도 인기척이 없다. 햇살 좋고 바람 좋은 풍요로운 들녘은 보는 이에게 여유롭기 그지없다.

형제목장의 청년 농군.
형제목장의 청년 농군.

작은 실개천이 지나는 곳에서 늘 궁금했던 것을 풀어주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추수를 끝낸 들녘에 깔린 볏단을 트랙터 두 대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한 대는 볏가리를 둥글게 말아 큰 덩어리를 만들고, 다른 한 대는 둥근 덩어리를 하얀 비닐로 랩핑했다. 시골을 다니며 보았던 이 커다란 마시멜로 같은 것은 어떻게 만드는지,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단단해진 논바닥을 한참을 걸어 들어가 일하느라 바쁜 농부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31세의 젊은 농부는 친절했다.

“이걸 곤포(梱包) 사일리지(silage)라고 해요. 소 먹이로 주려고 추수가 끝나면 볏단을 잘 말려서 이렇게 트랙터에 다른 기계를 붙여서 포장을 해두면 보관상태가 좋거든요.”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었다. 동생과 함께 형제목장을 운영하는데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용기 있게 시작했지만 점점 더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저희는 젖소 목장이에요. 3년쯤 지났는데 갈수록 일이 많아져요. 게다가 국제간 협정이라든가 불안정한 정책들, 원유가격 그리고 계속되는 투자와 미래를 위한 대비라든가 알면 알수록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그는 휴일 없는 노동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동네에서 또래 친구도 없는 마당에 미혼인 형제에게는 여자 친구를 만날 기회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시간이 좀 날 때에는 시내로 나가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다소 말랐지만 강건하고 믿음직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고 들을 돌아 충효로로 올라서니 하얀 마시멜로는 두 배로 늘었다. 사르르 입에 녹는 마시멜로처럼 달달한 사랑이 그에게도 찾아오기를 바란다.

충효로는 추곡리를 중심으로 발산리와 행촌리를 이어주고 강촌과 홍천으로 갈수 있는 길이다. 충효로 중간쯤 추곡고개길과 T자로 만나는 삼거리에 지점에 추곡막국수집이 있다. 가게 앞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 선글라스를 쓴 주인장이 의자에 앉아 지나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 마을이 아주 조용했어요. 양양고속도로가 생기며 차가 막히면 우회도로로 많이 이용되니 주말에 지나는 차들이 아주 많아졌어요. 그런데 우리 마을을 어디에다 소개하시나? 우리 아들도 서울에서도, 강원일보에서도 기자생활을 했는데 요새는 뭐 시도 쓰고 그런다네.”

민창수(81) 할아버지의 아들은 민왕기 시인이었다. 작년에 《아늑》이란 시집을 달아실출판사에서 출간했는데, 나도 그 시집을 가지고 있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할아버지에게 강촌에서 번지점프를 국내 최초로 들여왔던 내력이며 민 시인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민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펼쳤다. 가게 앞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와 이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을 소년 민왕기도 떠오르는 시, ‘시절’이 있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좋았던 시절, 미루나무 아래 앉아 늙고 싶은 오후다/ 여기 앉아보니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렇게 있다 보면 조용해지고, 지나가는 것은 모두 좋았다는 생각에/ 지금도 그때도 모두 좋았던 시절, 눈물 많아 좋았던 시절이라고 해 본다/ 혼자 있길 좋아했던 어린애가 늘씬한 미루나무 아래 앉아 여물고 있다/ 구름이 시절을 천천히 지나간다 시절은 그렇게 지나야 한다는 듯이 천천히 지나간다

시인의 아버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주묘와 충무공 구인후의 묘소 위치를 일러주었다. 마을사람들이 공주묘라 부르는 묘역은 중종의 셋째 딸 효순공주와 능원위 구사안의 묘역이었다. 공주묘에서 바라보는 추곡리의 전경은 고요하고 평안했다. 충무공 구인후의 묘역은 추곡고갯길 마을쉼터 건너편에 있었다. 추곡2반 버스정류소 옆, 태극기를 꽂은 집이 후손이라 했다. 두 곳 모두 길에서 묘역이 보인다.

묘역보다는 추곡2반 버스 정류소 옆으로 난 소로에 관심이 더 갔다. 흙벽돌로 지은 우사가 발길을 붙잡았다. 소가 두 마리 있었다. 낮선 이와 마주한 소는 수줍은 듯 커다란 몸을 숨길 데도 없는데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우사의 주인은 바로 앞 100년 된 집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정씨 할아버지다. 조금씩 개량했지만 뼈대는 그대로라고 한다. 30년 정도 된 이 우사는 담배농사를 그만둔 후 건조장 흙벽돌을 재활용한 것이다.

아픔을 스스로 치유한 은행나무.
아픔을 스스로 치유한 은행나무.

“나는 어려서 잘 모르지만 6·25 이전에는 이곳이 남면 소재지였답니다. 그래 주요시설이 이 동네에 모여 있으니 전쟁 때 집중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었대요. 그런데 저 우사 옆에 은행나무는 그걸 알고 있지. 폭격을 맞아 꺾이고 불에 탄 나무가 다시 살아서 새로 피부를 늘려 시커멓던 화상자국을 다 감쌌어요.”

시절을 지켜보던 은행나무가 대를 이은 소들의 보금자리 위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건너에는 형제목장의 젖소들이 이따금 울어댔다. 목장이 있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휴, 다 그러고 사는 거지. 옛날엔 더 힘든 날도 많았잖아요. 다 같이 사는 거지”하며 조용히 웃었다.

어느새 날은 선득해지고 추곡저수지 길의 풍경도 가을이 깊어진다.

추곡저수지 길의 가을.
추곡저수지 길의 가을.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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