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정 (시골로 시집온 세 아이의 엄마)
김인정 (시골로 시집온 세 아이의 엄마)

고탄이라는 마을로 시집을 왔다. 마을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다 보면 소소한 재미들이 많다. 그렇게 혼자 걷던 길이 세월이 가니 아이들이 하나, 둘에서 서넛, 대여섯, 어떨 때는 무더기로 함께 걸을 때도 종종 있다. 애써 흙먼지를 일으키며 걷는 길, 구불구불 논둑길, 개구리를 보다가 논에 빠지기도 하고, 도랑을 훌쩍훌쩍 위험스럽게 뛰어넘는 아이들, 바람처럼 달리는 아이들, 고양이, 강아지, 벌레, 담장의 보리수 열매…, 아이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 그렇게 시골 마을엔 사랑스러운 것들이 많고도 많다. 그 사이사이 어르신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인사 합창이 있고, 너는 누구니? 어디사니? 하니 어르신들과의 물음과 답이 오간다.

아주 오래 전 옛이야기처럼 시작된 별빛 공부방. 아이들과 마을 여기저기를 걷고, 달리고, 어느 날은 매실나무 밭에서 그림도 그리고, 길 가다 농가에 들러 인사도 하고 농가에서 하는 것들을 구경도 하며…, 계획함이 없는 그런 자유로운 순간들이 많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 줄 알았고, 호기심과 자신들의 세계를 마을이라는 공간 속에서 흘러가는 냇물처럼 함께 흐른 것 같다. 세월은 흐르고 농촌유학과 더불어 별빛도 이런저런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늘 시도하게 되었고, 그중에 의식주라는 이름으로 텃밭, 바느질, 요리, 목공이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렇게 마을 안에서 작게나마 우리끼리 하던 것들이 바깥의 너른 세상에서는 ‘온마을학교’,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별빛의 온마을학교는 ‘마을어르신들의 지혜’를 배우는 곳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도 듣고, 청소와 창문에 ‘뽁뽁이’를 붙여드리고, 아주 간단한 집수리로 문짝을 고쳐 달거나, 신발장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여기에 ‘생활의 지혜’라는 주제로 마을 어르신들과 깍두기 담기, 깻잎 따서 삭히기, 밤 줍기, 감자떡 만들기, 배숙과 같은 전통음료 만들기…, 만든 음료와 깍두기는 독거어르신 댁에 보내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혼자 사는 어르신 댁이 갑자기 들썩들썩해진다.

“야 너 화장실 청소해봤냐? 나 처음이다.” 

“나도, 나도 처음, 그런데 재밌지? 그치, 그치?”

수다 반 청소 반 속에 살짝살짝 ‘천정 닦아라, 유리창 닦아라, 조심해라’ 잔소리가 더해진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 되면 둘러 앉아 그날 가져간 간식을 꺼내먹으면서 어르신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쟁 이야기, 못 먹고 살던 이야기들…, 아이들 머리가 천정에 닿기도 하는 좁은 방에 둘러 앉아 맛난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할머니를 웃겨드리고 꼬치꼬치 다정하게도 이것저것 물어보는 녀석은 일할 때 제일 뺀질거리는 녀석이다. 이렇듯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재능들이 마을 안에서 작게나마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온마을학교, 마을교육공동체는 이름으로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교육으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정작 공동체적 삶을 살지 않으면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또 아이들에게 공동체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볼 일이다. 마을교육은 자연스레 물드는 삶의 배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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