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엄마! 수능대박 마카롱 사야하는데 같이 가주시면 안돼요?” 지난 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둘째 아이가 부탁한다. 수능을 치르는 00언니에게 수능대박이라 장식된 마카롱을 선물하고 싶은데 마카롱집이 버스타거나 걷기 어려운 위치라 차타고 들르기로 했다. “수능대박 마카롱을 사고 싶은데요.” 주인은 수능대박을 장식한 마카롱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냉장고에서 꺼내와 조심스레 열었다. 두 가지 종류의 수능대박장식 마카롱이 보물처럼 놓여있다. “한 개씩만 드릴 수 있어요. 아님 예약을 하시고 수요일에 오셔야 합니다.” 수능이 아니라 수능대박 마카롱집이 대박이 난듯하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장 예쁜 메모지를 찾고 형형색색의 펜들을 쌓아두고 수능을 치를 언니에게 온갖 응원의 말을 적었다. 작년 이맘때 우리 집 첫째도 수능을 치렀다. 우리끼리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찰떡, 초콜릿이 쌓였다, 첫째를 응원하는 마음들과 함께. 수능을 치르는 날엔 모든 사람들이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한마음이 되어 기꺼이 출근시간을 조정하고, 도로에서도 양보한다. 모양만 봐서는 수험생들이 치르는 그 시험이 성인식이라도 되는 것 같다. 한마음으로 기꺼이 축복한다. “그래!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결과를 얻어라. 그리고 네 꿈을 펼쳐라.”

“엄마!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무얼 한 건가, 무슨 생각으로 살았나 싶어요.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대학 가려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살았는데 대학이 고등학교랑 다르지 않아 정말 실망했어요. 저는 1학년 1학기 내내 방황했어요.”

스무 살 첫째는 지금 잠시 휴학을 하고 10개월 예정으로 스웨덴에 머물고 있다. 세계 각지의 단체와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제 청소년 자기주도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여름 그곳에 도착 후 첫 1주일을 보낸 후 한 말이다.

“매일저녁 토론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눠요. 내게 진정 필요한 것, 자유, 지위, 헌신, 환경…, 저는 그것들을 생각해 본적도 없고 의견을 나눠본 적도 없는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그것에 대해 엄청 고민하고 많이 생각해온 것처럼 보여요. 나는 무력해요.”

다양한 나라에서 온 20대들이 작은 그룹을 지어 음식 만들기와 청소 등 생활은 스스로 꾸려가고, 강의와 토론, 다양한 예술작업들을 선택해 자기가 담긴 작품을 만든다. 한 달 전에는 “생애 첫 요리를 스웨덴에서 하다니!”라는 말과 함께 잡채사진을 보내왔다. 자기가 속한 소그룹에서 ‘한국의 밤’이라 이름 짓고 우리나라 음식으로 저녁을 차렸단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운동화를 빨거나 교복을 다리는 등의 집안일들은 해 왔지만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고 상 차려 대접 한 것이 감격스러웠나 보다. 첫 주 “나는 무력해요”라고 했던 아이는 빠르게 그곳 생활에 적응하여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금속공예나 신체예술작업등 다양한 활동에 몰입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주변을 나와의 관계를 통해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듯하다.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쇳조각 한 개, 친구, 가족….

둘째가 수능대박 마카롱을 선물한 00이는 우리가족 모두와 가깝고 참 고운 성품을 가진 아이다. 엊그제 통화에서 큰아이가 이야기했다.

“00이가 여기 와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수능이 끝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가치 있는 것도 아니며 새롭게 펼쳐갈 다양한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둘째가 마카롱과 메모를 넣은 상자에 나도 00이에게 주는 카드를 넣었다.

“사랑하는 00아! 참 많이 애쓰고 몰두했을 너의 시간들을 축복한다. 이제 시작이야. 네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렴. 다른 사람들이 네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고 싶지만 못했던 것들을. 대박이 아닌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 세상으로 성큼 내딛을 너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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