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 (함께하는교회 담임목사)
김호경 (함께하는교회 담임목사)

나에겐 언제부터인가 1년 12개월의 각 달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를 들면 1월은 새롭게 시작하는 달, 2월과 3월은 졸업과 입학을 생각하는 달, 4월은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달, 5월은 가정의 달…, 하는 식이다.

11월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는 감사의 달로 보낸다.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이 돌아왔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살기는 어렵다. 밀로 만든 빵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적어도 열다섯 명의 수고를 거쳐야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모르는 이웃의 도움에 대하여 감사해야한다는 생각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나마 있다면 나 또한 어느 한 부분에서 한 몫을 감당 하고 있다는 자기위안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감당하는 몫에 비하여 타인으로부터 받은 혜택이나 도움은 비교할 수 없이 너무나도 크다는 데에 있다.

장애를 지닌 나로서는 11월이 되면 이웃에게 큰 빚을 졌다는 마음으로 한 달을 보낸다.

그것이 남다른 것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늘 나에게 주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일어난다. 뷔페식당에 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챙겨준 음식을 받고 수저를 들려하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도움을 주는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다.

20여년 전 한 청년과 지리산을 종주한 적이 있다. 2박3일 여정으로 노고단에서부터 천왕봉까지의 산행이었다. 지리산 능선과 정상에서 느끼는 기분은 땅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체험하고 싶었다.

서울역 0시발 기차를 타고 구례역에서 내려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노고단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두 중년 여성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계단을 오르는 우리에 대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하릴없이 듣게 되었다.

한 사람이 “대단하다 대단해”라고 말하자 그의 동행자가 “대단하기는 뭐가 대단해! 옆 사람 생고생시키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두 사람 말이 다 옳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앞의 여성은 혹시라도 자신이 장애를 입으면 꿋꿋하게 이겨내며 살아갈 것 같았고, 그의 말을 받았던 동행자는 혹시 장애를 입으면 집에 틀어박혀 비탄과 절망의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나와 함께 지리산을 종주했던 청년에게 다시 한 번 인사하고 싶다.

청년아! 고맙다. 기쁨으로 나와 함께 지리산을 종주해 줘서.

그대는 내게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몸으로 보여 주었지.

고맙다. 너무나도 고맙다.

키워드
#감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