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막국수협의회 홍웅기 회장

점심 영업을 마치고 박물관에서 기다리는 홍웅기(54) 씨를 만나러 도착한 막국수체험박물관 주변은 메밀꽃이 한창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이루어진 막국수와의 첫 만남은 난감 그 자체였다.. 별다른 양념도 화사한 고명도 없이 거무스름한 면과 멀건 동치미국물의 색 조합부터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찰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면발은 입에 넣고 씹기도 전에 뚝뚝 끊어졌다. 허나 막국수의 그 슴슴함과 개운한 소박함, 쉬이 편안해지는 몸이 매력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웅기 회장의 명함은 막국수와 함께 해온 오랜 인연만큼 다양한 이력으로 빼곡하다.
홍웅기 회장의 명함은 막국수와 함께 해온 오랜 인연만큼 다양한 이력으로 빼곡하다.

춘천막국수협의회 홍 회장은 대를 이어 메밀을 재배하고 제분하여 직접 막국수를 뽑는다. 홍 회장의 부모님은 1974년 ‘춘천 막국수 면옥’이란 상호로 개업을 했다. 1976년에 토산식품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사업을 확장해 제분소까지 운영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대학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이 가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마저 고인이 되시고 형이 식당과 제분소를 다 맡아 운영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결혼하고 곧 바로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형이 하던 사업이 잘못되는 바람에 집안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가족이 빚더미에 앉게 되고 식당은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기게 되었죠. 이른 나이에 시집 온 아내가 지금껏 식당일을 하고 있으니 고생이 많았죠.”

그야말로 막국수 인생이다. 그의 명함은 앞뒤로 빼곡했다. 대한명인 제07-174호, ‘매바우 명가 춘천막국수’ 대표, 춘천막국수협의회 회장, 춘천막국수협의회 영농조합법인 대표로서 막국수체험박물관 운영과 막국수닭갈비 축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1999년에 꾸려진 춘천막국수협의회에는 약 100개의 업소가 참여하고 있다. 협의회 회원들은 2003년 영농조합을 만들어 우리메밀 재배 농가를 확대하고자 무료 종자보급과 전량수매를 하고 있다. 생산량 확대를 위해 우량종자를 찾고, 메밀 가공품도 판매하고 있고, 다양한 상품개발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1층에 전시된 메밀 가공품.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1층에 전시된 메밀 가공품.

“업소에서 순 우리메밀을 사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메밀을 재배하는 농가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수입 메밀과 가격이 두 배 차이가 나요. 그래서 섞어서 사용하는 업소가 많아요. 메밀가루가 거무스름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메밀을 제분하면 그렇지 않아요. 영농조합에서는 메밀가루나 국수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순 우리메밀로는 주로 메밀차, 메밀쌀, 메밀싹진액, 메밀싹분말 등을 생산합니다. 특히 메밀 싹은 종자보다 루틴함량이 많은데 황메밀싹나물은 유기농채소로 루틴이 종자에 비해 27배나 많아요.”

메밀의 원산지는 동아시아 온대 북부의 바이칼호·만주·아무르강변 등에 걸친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의 분묘에서도 메밀이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7∼9세기의 당나라 때 일반에 알려져서 10∼13세기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통해 일본에 건너간 메밀은 8세기에 들어서야 재배가 권장되었다고 하니 그보다는 빨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고문헌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생육기간이 짧고 추위에 잘 견디며 척박한 산간 토양지대에서 대작과 응급작으로 좋고 영양과 저장성이 좋다고 했으며, 《구황벽곡방(救荒辟穀方)》에도 구황작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강원 산지에 메밀을 많이 심었다. 메밀은 봄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는 여름메밀과 여름에 심어 늦가을에 수확하는 가을메밀이 있는데 주로 재배되는 품종은 가을메밀의 각 지방 재래종이다. 그러므로 메밀국수는 주로 겨울에 먹었던 음식이다.

“평양냉면도 본래는 메밀국수라 했어요. 메밀가루에 전분을 섞어서 면을 뽑았죠. 요즘은 메밀이 찬 음식이라 여름철을 더 선호하죠. 그래서 겨울에는 온국수를 만들기도 합니다. 영동 지역은 주로 동치미 국물을 넣은 물막국수를 많이 먹고, 춘천 부근은 고기 육수를 넣은 막국수가 많았어요. 지금은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비빔국수도 업체마다 개성 있게 만들고 새싹이나 꿩고기를 넣는 등의 고명도 다양해졌지요. 막국수 축제에는 새로운 막국수와 메밀요리를 개발한 요리경연도 하고 세계화를 위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막국수가 춘천시내에 자리잡게 된 내력도 설명해 주었다.

《춘천백년사》에 의하면 19세기말 춘천지역은 을미사변을 계기로 의병의 발원지 중 하나였다. 의병들은 가족과 함께 일본군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어 조, 메밀, 콩 등으로 연명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도 이들은 하산하지 않고 그곳에 정착하며 살게 되었고 그들이 짓던 메밀이 읍내로 내려왔고, 한국전쟁 직후 생활고를 위해 화전민들이 많이 먹던 메밀국수로 장사를 하게 된 것이 막국수가 보편화되는 계기였으리라 짐작한단다.

“언제부터 막국수라는 이름을 사용했는지는 잘 몰라요. 그런데 ‘방씨(方氏)막국수’라는 상호가 표시된 지도가 있어요. 1990년 9월 춘천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1930년대에 춘천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이 모여 당시 춘천의 시가지 약도를 그렸는데, 약도에는 지금의 요선동 소양 고갯길에 있던 이 집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죠. 아마도 최초의 춘천 막국수 음식점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메밀은 글루텐 성분이 없어 끈기가 부족해 면이 뚝뚝 끊어지고 국수를 말아놓으면 금방 불어서 미리 만들어 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만들자마자 먹어야 해서 막국수라 합니다.”

‘막국수체험박물관’ 주변 농가의 메밀밭.
‘막국수체험박물관’ 주변 농가의 메밀밭.

막국수협의회는 2015년부터 춘천시와 위탁계약을 통해 막국수체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는 단백질함량이 많고 혈압강하제인 루틴의 함량이 높다는 메밀의 효능과 세계의 메밀음식, 메밀상품, 전통방식으로 막국수를 만들던 기구들과 방법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은 직접 반죽을 하고 전통 방식의 막국수 틀에서 면을 뽑아 막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체험장이다. 이 체험장은 가족 또는 단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예전에는 메밀반죽이 쉽지 않았어요. 국수틀도 나무로 만들어진데다 사람의 힘으로 누르니 뚝뚝 끊기지요. 체험을 통하면 아이들도 쉽게 친근해지고 더 맛있게 느껴지지요.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곳 산천리는 접근성이 좀 떨어져요. 닭갈비 막국수 축제장과 동떨어져서 아쉽습니다.”

그는 막국수 닭갈비 축제에 대한 변화도 모색하고 있었다. 춘천의 문화예술 단체와 작은 규모의 산발적인 축제들이 모여 먹고, 보고, 즐기고, 감동이 충만한 세계적 축제가 되기를 희망하는 속내를 밝혔다.

국수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막국수, 콩국수, 냉면, 밀면, 온면, 올챙이국수, 칼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잡채, 자장면, 짬뽕, 라면까지 면의 종류도 다양하다. 춘천을 넘어 ‘한국’ 하면 막국수가 떠오를 정도로 세계화에 노력하고 싶다는 열정이 긴 국숫가락처럼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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