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라온오케스트라 단원)
백경미 (라온오케스트라 단원)

너무 날카로워서 신경줄 팽팽하게 당겨지는 날, 듣기를 피하는 음악이 바이올린 곡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영혼까지 베일 듯 예리하게 벼려진 듯 가늘고 뾰족한 그 선율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처럼 안개가 눈앞의 모든 것들을 점령해 버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는데 섬광처럼 마음을 내리긋는 소리가 심장을 썩 벤다. ‘생상의 하바네이즈’다. 혓바늘 돋듯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머리끝이 쭈뼛 선다. 아름답다.

나는 어렸을 적 바이올린의 그 매끈하고 감칠맛 나는 선율을 참 좋아했다.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든든하게 얼었던 소양강의 오래 전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초록색이 섞인 그 미묘한 푸른빛의 얼음이 얼었던 날, 어디서 작은 스케이트를 구해 온 오빠가 어린 내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겠다고 갔던 기억, 잘 갈린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이 매끄러운 얼음판에 닿았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게는 그 장면이 바이올린 선율이 주는 감각적 느낌으로 오버랩 된다. 뺨에 와 닿던 차가운 바람과 머리 위에 시리도록 파란색으로 펼쳐져 있던 명징한 색채의 하늘빛도 바이올린 음색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그 선명한 색채로 연주되는 생상의 하바네이즈는 주 선율이 바이올린으로 연주되어 마치 바이올린독주 같다.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하바네라’의 선율이 섞여있는 첫 번째 테마는 카르멘의 요염한 춤을 머릿속에 그려주게 하는 관능적이고 느린 작은 북소리 같은 리듬이 저 아래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반주처럼 깔리고 그 위에서 너무나 예쁜 선율에 빠른 템포를 더해 마치 물수제비 뜰 때 물 위를 톡톡 튀는 돌멩이의 춤처럼 파드득 난다.

작곡가 Camille Saint-Saens(카미유 생상). 프랑스의 신동 피아니스트였던 그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러시아의 발레리나 ‘Anna Pavlova(안나 파블로바)’를 다룬 영화에서 그녀가 추던 ‘빈사의 백조-생상의 백조 에 맞춰 안무된 춤’을 반주해 주던 작곡가의 모습이었다. 요란하지 않고 마음씨 넓은 아저씨로 그려진 그의 이미지가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던 기억 때문에 나는 그의 음악을 조건 없이 좋아한다. 그러다가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어떤 것이 그의 음악이 되었을까? 무척 궁금해지지만 어쩌랴 지금은 음악을 통해 상상할 밖에. 아무튼 ‘생상의 하바네이즈’는 Maxim Vengerov(막심 벤게로프)의 연주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어둑한 바의 구석진 곳에서 수작을 걸어올 듯한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은 바이올린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의 연주를 들으면 그 생각은 사라진다. 테크닉이 거의 완벽한 잘 훈련된 연주자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바이올린은 반듯하고 로맨틱하며 무척 자유롭다. ‘생상의 하바네이즈’를 ‘막심 벤게로프’의 연주로 듣는 아침 출근길은 마치 낮게 가라앉은 흐린 하늘과 주변을 온통 포위한 안개 속에서, 가슴 졸이다가 처음 고백을 듣게 된 연인으로부터 갑작스레 받아들인 깊은 키스의 달콤함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하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