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아내로 사는 중국인 임소비 씨

손님이 많은 카페에서 만났다. 바로 앞 12시 방향으로 앉지 않고 1시 방향의 의자에 앉는 그녀를. 중국을 떠나 한국인 남편과 춘천에 산 지 10년이 되었다.

한자로 이름의 뜻을 알아보는 인터뷰이도 처음이었다. 임소비(林少斐). 한국 이름으로 익숙하지 않고 발음이 생소해서 그런가? 예쁘다. 작은 부분까지 쪼개어 적어지는 모양까지도 아름다운 광채가 난다는 뜻의 이름이기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가족의 응원과 꿈에 대한 열정으로 한국 생활을 이어간다는 임소비 씨.       김남순 시민기자
가족의 응원과 꿈에 대한 열정으로 한국 생활을 이어간다는 임소비 씨. 김남순 시민기자

"보수적인 성격이에요. 변화를 좋아하기보다 한번 시작한 일을 꾸준히 하는 그런 사람이요. 내성적이라 주도해서 사람들과 일을 접하지도 않고요. 한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모험이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가능한 행복입니다.”

수줍게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가 어떻게 한국에 와서 10년을 살고 있는지 자기도 의문이란다. 가끔 중국어처럼 우아하게 굴려지는 한국어가 듣기 좋았다. 남편과 딸, 아들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보여줄 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낯설고 수줍어하다가도 가족에는 영락없는 편안함이 묻어 나왔다.

“2008년 2월 말에 한국에 들어와서 8월에 결혼했어요. 중국 국적과 한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다문화가정입니다. 벌써 첫째 딸아이는 초등 2학년이고, 둘째 아들은 6살이네요. 각자 학교와 유치원에서 신나게 지내고 있답니다.”

85년생으로 벌써 34세라고. 안 믿겨진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에서의 10년도 금방 갔다고 한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서 태어나 북경 화공대학교를 졸업했다. 3학년 때 어학연수 온 지금의 남편에게 중국어 회화를 가르쳐 주기 위해 만났다. 남편은 홍천 대명콘도에서 스키용품 판매 사업을 하며 6개월 동안 중국으로 어학연수 차 와 있던 상황이었다. 남편이 학생도 아니었고 이미 자영업 사장인데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힘들게 유학생활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웃으며 모르겠단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온 걸음이 아니었을까. 6개월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와 겨울 시즌을 보내고 다시 중국으로 재입국 했단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수줍어하는 감정이 생겼다고. ‘나와 같이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겠냐’고 물어 보는 그 사람에게 그냥 신뢰가 생겼다. 타국에서의 결혼 생활이 두렵지 않았고 만약 무서웠으면 안 왔을 거란다. 내성적이지만 성격이 급한 그녀에게 남편의 변함없는 자상함과 배려는 지금까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따뜻한 남편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오히려 그녀가 참을성이 생겼단다.

“춘천에서 10년 정도 살았는데 너무 좋아요. 중국 고향과 다르면서도 닮아서 처음 춘천을 만났을 때 따뜻했거든요. 사람들이 화려하지 않고 구수한 느낌, 나와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그 때의 감동을 표현하기에 한국어가 부족하다고 했지만 표정에 묻어났다. 춘천을 참 좋아하는 구나! 큰 도시가 아니라서 조용하고 특히 자연이 너무 예쁘단다. 고향 산에는 나무가 많지 않아서 땅이 주로 보이는데 춘천에 있는 산은 나무가 빼곡해서 그 초록이 너무 감사했다고. 

민속촌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임소비 씨.  사진=임소비
민속촌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임소비 씨. 사진=임소비

춘천의 따뜻함에는 거주지인 아파트 단지 이야기가 포함된다. 3층에 사는데 위, 아래 층 좋은 분들을 만나 행복하다. 아이들이 많이 뛰어도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고. 시어머니가 싫은 소리 오가기 전에 미리 먼저 활기찬 아이들 때문에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리라고 가르쳐 주셨다. 지혜로운 어머님 덕에, 배려해 주는 이웃들 덕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너무 좋다. 8층 할머니는 임씨의 아이들을 가끔 마중해 주고, 임씨 또한 할머니의 손주를 같이 봐주기도 한다. 같이 아이들을 키우니 든든하고 그 이웃 사랑이 반갑단다.

신기하고 다름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인 것은 아직 못 찾았다고. 그러기에 춘천에서 사람들과 어울림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의 다양한 봉사, 동아리 활동이 너무 좋아요. 2016년 겨울 소양로 연탄 봉사를 갔었어요. 반나절 정도였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그런지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어려운 이웃에게 제 힘을 보태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또 안 쓰는 물건을 기부 받아서 재활용 하거나 되팔아 필요한 이에게 그 이익금을 전달하는 경험도 소중하고요. 이런 활동들이 어쩌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춘천은 소소하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참 많은 것 같거든요.” 

한국에 들어와서 가정을 이루었고 사람들을 만나 따뜻함을 배웠으며 그것을 다시 나누어주고 있는 그녀였다. 이런 그녀에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공부’였다. 공부를 참 좋아한단다. 중국에서는 졸업 후 10개월 동안 회사를 다녔기에 계속 돈을 벌었을 거라고.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서 여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양육 때문에 힘들어하고 지쳐있는 그녀에게 남편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 권했고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석사과정을 밟았다. 출산 때문에 잠시 멈췄다가 회계학과로 편입해서 지금은 박사과정 3학기다. 인터뷰하며 ‘헉!’과 ‘헐~’을 세 번은 외쳤던 듯싶다. 중국에서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중문과 석사, 회계학과 편입·졸업 후 박사과정을 공부 중이니 말이다.

“중국국가공인회계사(CICPA) 자격증 시험을 10월 중순에 봤어요. 12월 중순에 결과가 나오는데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2018년 마지막 목표이자 내년을 준비하는 도전입니다. 한국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인 K-IFRS를 배우고 있으니 미리 준비하는 셈이에요. 중국도 일부분이긴 하지만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나중에 중국으로 가서 취직할 때 도움이 되겠지요. 중국 세금을 공부 중인데 한국보다는 훨씬 쉽거든요. 한국 세무회계가 복잡하고 규칙도 더 많아요.”

2-3년 뒤에는 중국으로 들어가려고 계획 중이라고 했다. 가족이 다 함께 말이다. 

“남편이 이제껏 저를 위해서 뒷바라지를 해주었으니 저도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배운 것을 활용해서 취직하고 싶어요. 대학 교수나 회계 전문가가 꿈이랍니다. 지금은 단지 꿈이지만(웃음),” 

“단지 꿈이지만…” 이라고 말하는 ‘임소비의 그 꿈’이 궁금했다. 

“중국 직장 다닐 때 주부로 있을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중국 주변 사람들 중에서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전 할 수 있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제 꿈이에요.” 

한국에 와서 잃은 것은 직장을 계속 다녔으면 모았을 돈이다. 얻은 것은 외국 생활의 경험으로 풍부한 자산을 모았고 나눈 것이다. 여행으로는 얻을 수 없는 나만의 것을.

학교를 다니니 계속 다니게 되는 것도 보수적인 자기 성격 때문이란다. 한번 무엇을 시작하면 변화보다는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 이렇게 말하지만 용기 있는 모험이 아닐까 싶다. 타국 생활, 타국인과의 어울림, 다른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진 큰 범위의 공부, 세부 전공을 선택해서 양국 간 공부, 그리고 어울림과 배움을 통한 나눔. 용기 있는 새로운 모험이라 말하고 싶다. 기꺼이 다른 곳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용기,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명확하게 받아들인 용기!

“괜찮다, 좋아요, 행복해요”라는 단어를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행복의 원천인 가족이 있었고, 배려와 따뜻함으로 무장된 남편이 지원군이기에 용기 있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모험이 괜찮고, 좋고, 행복한 것이다.

백종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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