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식을 흐리게 하고 물자공출하려는 목적으로 일본 장례문화 심어
국화, “일본 왕실 상징, 죽음 자체가 왕실에 귀속된다는 의미”

100년 저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에는 여전히 일본 잔재들이 많다.

범국민적 항일정신과 독재에 대한 저항정신은 후퇴 없는 민주주의를 100년간 이끌었고 중국이나 인도의 민주주의 성장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화려한 전통수의. 일제강점기 이전은 돌아가신 분이 평소에 입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썼다. 사진=구글 이미지
화려한 전통수의. 일제강점기 이전은 돌아가신 분이 평소에 입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썼다. 사진=구글 이미지

하지만 우리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일제의 잔재를 발견할 때마다 자긍심보다 씁쓸한 마음이 앞서곤 한다. 수없이 많은 잔재가 있지만 지난 2일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소개된 장례문화는 다시 한 번 그 문제의 심각성을 상기시켰다. 방송의 패널로 연결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서해성 총감독은 삼베수의와 국화, 그리고 완장과 리본 등 보편화된 현대 장례문화는 일본식 장례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총감독은 “전통수의는 유교를 따르던 조선시대 습의(襲衣)로서 삼베가 아닌 입던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사용했다”면서 “삼베를 수의로 사용하게 된 것은 물자 부족을 핑계로 좋은 옷감을 공출해 가려는 일본의 목적”이라고 말하며 죄인이 입었던 삼베를 수의로 쓰기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수의 외에도 장례문화에서 일본 잔재는 여러 가지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장례는 국화를 쓰지 않았다. 현대식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장식하는 국화는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죽음 자체가 왕실에 귀속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상주가 팔에 차는 완장과 유족이 다는 리본, 영정사진 액자를 장식하는 리본 또한 일본의 장례 문화에서 비롯됐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생활양식 중 각종 의례는 구태가 의연하여 개선할 여지가 작지 않다"며 ‘의례준칙’을 발표하면서부터 전통적 장례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1973년 ‘가정의례 준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장례문화의 간소화, 정례화 추구와 함께 80년대 일본식 장례 교육을 받은 장례 업체의 상술에 의해 일본식 장례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 만해도 영좌(신위를 모셔 놓은 자리) 뒤 병풍을 치고 국화 대신 색지로 관을 장식했던 전통 장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전통 장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상복이 매우 불편했고 장기간 치르는 장례에 생활고를 겪기도 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상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죽음을 귀하게 여기던 조선의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바꾸고 수탈 목적과 일본의 전통을 심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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