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얼마 전 둘째아이와 갑작스런 이별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이 모두 배우는 과정이라 하지만 참 어려운 배움을 통해 삶을 비춰보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현이 엄마예요”하며, 아침 일찍 장례식장을 찾아오신 한 학부모님. 아이 학급 부모님들이나 반 친구들도 자주 만날 기회가 없다보니 알고 지내는 부모님들이 많지 않던 터였다. 이름을 들어보니 발달장애가 있던 아들을 늘 챙겨주던 학생의 엄마였다. 낯선 사이였지만 내 손을 꼭 잡고는 함께 울어주셨다. 감사인사를 늦게나마 드리고 싶었던 분인데 오히려 내가 감사를 많이 받았다. 현이가 덕분에 많이 컸다고, 꼭 한 번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유찬’이 없이 인사를 하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이다. 일부러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발길을 청했을 어머니를 보며 현이를 알 수 있었다. 집에서도 갑작스레 친구를 잃고 너무 힘들어한다는 현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우린 오히려 함께 성장할 것을 공감하고 있었다. 

비교적 많은 시간을 교육현장과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다보니 나 역시도 답을 구하려는 틀거리에 갇혀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교육을 둘러싸고 만나는 다양한 관계들이 각자의 역할 속에서 무엇을 만들기보다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충분히 하면 어떨까 싶다. 그냥 ‘행복한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 그것이 설령 옆집 아이와 마주칠 때마다 따뜻하게 인사 나누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아들의 장례식장 한 쪽에서 교복을 입고 고개를 푹 숙여 흐느끼던 열 댓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어깨를 들썩이던 녀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철없는 중1이 아니었다. 슬픔을 말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고마웠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숨기는 녀석들과 “슬플 땐 우는 거야” 하면서 또 같이 울고, 그러면서 내가 해줄 수 있었던 말은 거의 없었다.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맘에 각인시키려 했던 작은 다짐이 있었을 뿐이다. “얘들아, 고마워. 아줌마가 힘은 없어도 너희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줄게.”  

‘좋은 어른, 좋은 어른’ 그 다짐이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내 삶의 이정표이자 목적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각자가 서 있는 다양한 자리들. 부모이자 자녀, 교사이자 부모, 학생이자 자녀 등등 구분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포지션에 맞는 ‘나’를 쪼개어 다양한 역할놀이를 하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잃지 않는 ‘나’를 세울 수 있다면, ‘나’를 중심으로 그런 역할도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나’다운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행복할 수 있다면, 행복한 엄마도, 행복한 선생님도, 행복한 학생도 각자의 그 연결을 통해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사회라는 공간과 관계 속에 함께 하는 이유일 것이다. 

행복한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존재감은 그렇게 또 우리들을 일으키는 힘이 될테니 말이다. 이번 호에 실린 장희숙 편집장의 단상 ‘교육 3주체 다시보기’의 마무리에서 교육은 또 희망이기도 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가정보다 큰 사회에서 부모 말고도 좋은 어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만큼 아이의 성장에 좋은 거름은 없다. 스스로 완벽한 부모가 되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부족한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주체로서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p.47)

일 년간 민들레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눠온 따뜻한 이웃들의 힘이 새삼 소중한 한 해였다.

*춘천민들레모임 :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7시에 로하스카페 나비(칠전동) (문의:010-9963-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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