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위화감은 조화되지 않은 어설픈 느낌이다. 보통 어떤 말을 들을 때, 정치권력을 쥔 지도자들에게 위화감을 느끼는가? 얼토당토않은 발언? 무식하고 몰상식한 언사? 그럴 때는 짜증과 분노가 유발되는 것이지 위화감은 아니다. 

지난달 27일. 지난 여름날 몇몇 뜻있는 농민들이 40여일 단식하며 요구했던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된 날이었다. 그날은 예상을 뛰어넘는 140여명의 농업계 대표들이 앞 다퉈 청와대에 모인 날이었다. 그날은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예능프로그램 주인공인 중학생 한태웅 군이 마이크를 잡고 ‘흙에 살리라’를 구성지게 부른 날이기도 했다. 그날은 노래를 들은 문대통령이 모처럼 희망을 운운한 날이기도 했다. “한태웅 군을 보며 한국농업의 희망을 본다.” 위화감에 속이 불편했다. 

희망에는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이루고자 하는 ‘바람’, 두개의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멋진 청년농부가 되고 싶다는 16살 중학생, 볼수록 신기하고 기특하고 대견하다. 한태웅 군은 가능성이 충분하니 분명 좋은 농민이 될 희망이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 했고, 농민이 한국농업의 희망인 것도 맞다. 그런데 흐뭇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 어린 친구에게서 한국농업의 ‘희망’을 ‘본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무슨 희망이 어떻게 대통령에게만 보인다는 말인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건넨 덕담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나는 그게 안 된다. 

희망은 어렵다! 귀에 달콤한 희망타령이 아니라 진정한 희망은 진실로 어렵다! 희망으로 가는 길은 고사하고 논하는 것조차도 어렵다! 위의 장면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까닭은 왜일까? 너무도 쉽게 너무나 어설프게 희망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현장의 어느 농민도 함부로 자신할 수 없는 한국농업의 희망이 급기야 예능 이벤트처럼 다루어지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위화감이다. 

“농민 여러분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겠습니다.” 대통령의 그날 발언은 대체로 참석자들을 다독이는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잊지 않았다. “과학적 데이터 분석에 입각한 스마트 농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스마트농정에 대해서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관계부처에 특별히 당부를 드립니다. 스마트농정의 시작과 끝은 철저하게 농민중심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의 그날 발언을 옮겨 적은 이유는 헛웃음이 나서다. 스마트농정은 스마트팜밸리라는 천억대 토목사업으로 퇴행하고 있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춘천 동면 솔밭에 사업을 끌어오고자 재도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수혜 농민 1백 명도 되지 않을 사업에 1천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스마트팜을 역설하면서 동시에 시작도 끝도 철저하게 농민중심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역설하는 대통령은,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아니면 기만적이거나.   

다른 측면의 위화감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어야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농업인 대표라는 사람들이 연루된 위화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치권력이 주는 위화감을 매끄럽게 화합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공을 세우는 신묘한 위화감이다. 귀에 달콤하게 희망을 운운하는 도지사·시장·군수의 병풍이 되고 들러리를 서는 것. 더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권·명예를 챙기기도 하는 그것. 이로써 민심과 권력의 ‘불화’라는 사실이 ‘조화’인양 어물쩍 넘어가고 급기야 위화감만이 남는 오래된 구도. 이런 대표들이 횡행하는 구역이 어디 농업계뿐이랴!

고백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한국농업의 희망은 가물가물하지만 이런저런 자문을 한답시고 회의비·교통비를 받기도 한다. 고백한다. 나도 그날 청와대에 초청되었더라면 썩은 미소였더라도 박수는 따라 쳤을 것 같다. 그러니 새해는 부끄러운 줄은 아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말은 쉬워도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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