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송구영신, 문자 그대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지막 날. 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친구의 수줍은 청첩장이 인사를 건넨다. 내 나이 오십, 결혼 23년차인 중년의 아줌마에게 오랫동안 비혼 상태였던 친구가 건네준 청첩장은 시쳇말로 ‘묘하게 맛있다’. 50대 초혼, 이 지점에서 가족선생의 직업병이 발동한다.

우리는 비굴하나 비굴하지 않으려 했던(!) 박사과정을 동고동락한 모종의 전우애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다. 이 친구가 드디어 솔로탈출을 했다는 점이야말로 축하하고 또 축하를 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50대 초혼 커플이 준비하는 결혼준비 과정이 자못 궁금해졌다. 각각 1인가구로 살아가던 이 커플. ‘어디서 살까? 누가 준비할까? 웨딩촬영도 하려나? 살림살이는? 그리고 가장 궁금한 건, 그럼 예단은?’ 

만혼의 시대, 결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는 어떻게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존의 형식에서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가장 재밌는 것은 함께 거주할 ‘집’을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배우자 남성의 행복주택에서 신혼을 시작한단다. 국가가 이미 집을 마련해 주었으니 큰돈도 필요 없고, 이미 있던 살림살이를 조금 업그레이드 하는 정도로 살림을 마련했단다. 많이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은 자녀들의 결혼 결심만으로도 이미 효도를 다했다며 예단에 대한 부담을 시원스레 날려주었다고. 당연히 지루한 주례사도 없다. 이 나이에 결혼하는데, 무슨 잔소리가 필요하랴! 아~ 부러워라. 정말 부러워라. 아무 것도 모르고 세상 유행 따라 할 거 안 할 거 다했던 내 결혼식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뿐. 게다가 수년간 잠자던 나의 연애세포를 마구 일깨우는 저 알콩알콩이란! 

모 결혼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회원간의 평균 초혼연령이 남성 36.2세, 여성 33.0세로 12년 전보다 남녀 각각 2.8세, 2.7세 이상 높아졌다. 남성의 초혼연령 분포를 2006년과 비교해보면, 33세 이하 혼인이 크게 줄고 34세 이상 혼인이 급증했다. 초혼 여성 역시 12년 전보다 31세 이하 결혼은 급감하고, 32세 이상 혼인이 늘었다. 

이제 만혼은 대세다. 사회로 진출한 청년들이 1인가구로 사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결혼을 안한다고? 진짜 결혼을 하지 않는 걸까? 이 엄동설한에도 청첩장이 날아드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듯하다. 아마도 결혼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결혼 시기, 결혼 준비 등 전통적인 결혼 문화에서 보다 자유롭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친구의 결혼으로 1인가구가 2가구 줄어들 것이다. 가족선생이 쓴 논문에는 지속적으로 1인가구가 증가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연구내용을 반박하는 즐거운 현상이다.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모처럼 예식장에 신부측 하객으로 설 생각을 하니 무뎌진 마음에 나비가 날아든다. 그리고 옆지기에게 이렇게 지근거려본다. “여보! 나 돌아갈래.” 놀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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