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자동차 너 주마. 명의 변경 해가라.” 낡은 차를 애지중지 아껴 타던 아버지께 아들과 며느리가 칠순 선물로 새 차를 사 드렸을 때 말할 수 없이 기뻐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걷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2012년형 차의 주행거리는 4만7천Km로 여전히 깨끗한 새 차 그대로다. 주행거리 20만km를 넘긴 딸의 차가 늘 마음에 걸렸던 아버지는 면허증을 반납하기로 결정하고, 차를 선물한 아들 내외에게 전화를 하셨단다. “내 차 너의 큰누나 주련다.”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께 선물로 드린 것이니 어떻게 하시든 아버지 뜻이면 저희는 좋습니다.” 그렇게 나는 흠집하나 없는 새 차를 거저 선물로 받게 되었다. 

아버지는 올해 일흔여섯, 만 75세다. 환갑 지나 몇 년 더 일을 하다 퇴직한 후로는 산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와 깎고 다듬어 십자가를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 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셨다. 

환갑이 되던 해엔 “노인이 지켜야 할 덕목”을 냉장고에 붙여두고 읽곤 했다. 평생 신앙심을 갖고 사셨는데 어느 해부턴가 예배당 중진 회의에도 발을 끊으셨다. 젊은 사람들이 잘 하는데 늙은이가 끼면 일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이른 새벽 가장 먼저 나가 예배당에 불 밝히는 것을 즐기셨다. 

엄마가 긴 여행을 떠나 자식들이 식사를 염려하면 한 마디 하셨다. “내 한입 먹는 거 내가 해결한다. 반찬도 해 오지마라. 밥 사먹는 것도 성가셔 내가 알아서 잘 하니 너희들은 걱정마라.” 

누구보다 총기가 빛났던 아버지, 칠순을 훌쩍 넘긴 후부터 “주차해 둔 곳을 못 찾아 한참을 찾았다. 전화번호나 계좌 번호도 분명히 맞게 옮겨 적었는데 자꾸 실수를 하네” 하시며 쓸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제 아버지는 판단하고 결정해야하는 일들을 하나씩 내려놓으신다. 대신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이신다. 작업장에서 종일 깎고 다듬고, 사포질 하며…….

“의논할 게 있어.” 엄마의 전화에 가슴이 덜컹! “저기, 합창단에서 새해 오디션을 다시 한다는데 나 할까 말까?” “엄마! 당연히 하셔야지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거 아니면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엄마는 노래도 잘하는데 오디션 안 보심 합창단에서도 서운해 할걸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니 오디션 본다.” 엄마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평생 업으로 삼았던 가게를 접은 이후로 이야기할머니와 합창단의 최고령 단원, 그리고 천으로 옷 만들어 나누어주기로 매일을 알뜰하게 쓰며 노년을 보내신다.

먼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할머니도 그랬다. 80세 이후로는 적게 드시던 진지마저 죽으로 바꾸며 드시는 걸 조금씩 줄이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해바라기’하러 나간 마당에서 풀을 뽑으셨고, 앉은 자세로 다니며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줍고 걸레질을 하셨다. 노년에 줄이고 멈출 것과 해야 할 것을 선택하셨던 것이다. 

손녀인 나는 평생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주변을 돌보셨던 할머니를 삶의 모범으로 삼고 닮고 싶다. 나 어리고 할머니 아직 젊었을 적엔 “방 깨끗이 해야지. 밥 남기면 못쓴다. 전기 불 꺼라” 하시며 좋은 습관을 길들여 주려 애쓰셨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일절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단지 “야위어 보인다. 밥은 먹었니?” 뿐. 구멍 난 양말의 발목을 잘라 다시 바느질해 덧버선을 지어 신으셨고, 유리병이나 비닐봉지가 생기면 깨끗하게 씻어 말려 반드시 다시 쓰셨다. 식은 밥 한 톨 허투루 버리지 않고 사소한 물건 하나도 소중히 아끼셨다. 

새해다. 나도 이제 웬만한 모임에선 연장자가 되는 나이에 들어섰다. 나는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멈출까? 그리고 어떤 모범이 될 수 있을까? 말이 아닌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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