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생각하기 ⑩] ‘폭풍우 치는 밤에’의 비밀 친구
[오랫동안 생각하기 ⑩] ‘폭풍우 치는 밤에’의 비밀 친구
  • 금시아 (시인)
  • 승인 201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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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 (시인)
금시아 (시인)

천둥 번개가 치는 폭풍우를 피해 어린 염소 ‘메이’는 낡은 오두막집으로 들어간다. 늑대인 ‘가부’도 무서워 오두막집으로 숨어든다. 오두막은 너무 깜깜하다. 서로를 알아볼 수가 없고 감기에 걸린 둘은 서로 냄새조차 맡을 수 없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니 염소와 늑대는 태연자약하다. 

“나는 메이야.” “나는 가부야.” 메이와 가부는 서로를 모른 채 대화를 나눈다. 둘은 식습관부터 싫어하는 것까지 너무나 잘 맞았다.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오두막집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약속의 암호를 ‘폭풍우 치는 밤에’로 정한다. 정체가 드러났을 때 어떤 험난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비밀 약속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만난 가부와 메이는 ‘폭풍우 치는 밤에’를 외치며 서로를 알아본다. 염소와 늑대는 먹고 먹히는 천적 관계에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만남이 가장 소중한 우정이란 걸 알고 가부와 메이는 주변의 시선을 피해 몰래몰래 만나는 비밀 친구가 된다.   

늑대와 염소의 독특한 만남으로 설정된 ‘폭풍우 치는 밤에’의 원작은 기무라 유이치의 그림책시리즈 7권이다. 2006년 스기이 기사브로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고 2013년에 아미아 테츠로 감독이 ‘폭풍우 치는 밤에 : 비밀의 친구’로 새롭게 제작하기도 했다.

약속은 상황이 변하거나 어떤 한쪽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지켜지기 어려워진다. 우정의 힘을 시험하는 장애물은 곳곳에 있는 법. 그러나 둘은 주변 여건이 불가능해질수록 서로 같이 있으면 더 따듯하고 행복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늑대는 염소를 먹고 싶은 고통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친구 메이와 같이 있는 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인 걸 알고 끝까지 약속을 지킨다. 

‘폭풍우 치는 밤에’는 먹이사슬 관계인 늑대와 염소가 비밀 우정을 다지고 키워나가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스릴과 비장함으로 잔잔한 울림을 준다. 특히 약속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이며 그 약속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 없이는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와 흑인 고등학생 친구 자말 윌라스의 우정을 다룬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도 약속의 장면이 나온다. “네가 우선 배워야 할 건 비밀을 간직하는 거야.” 비밀이 지켜질 때 약속이 지켜지고 둘의 관계가 유효해진다. 또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 관포지교를 보자.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의 우정은 서로를 믿고 알아주는 무언의 약속에 있었다. 

유백아와 가난한 나무꾼 종자기의 우정도 있다. 유백아는 자신의 슬프고 깊은 거문고 연주를 이해한 종자기가 죽자 유일하게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었던 종자기를 따라 죽는다.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부르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한때 나는 가비에게 잡아먹혀도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 우린 함께 이 전설의 숲으로 오지 말았어야 해. 폭풍우 치는 밤에 만나지 않았어야 해.” “폭풍우 치는 밤에?” 아름답고 순수한 메이와 가부를 만나고 난 후 내 안구와 영혼에 낀 미세먼지가 씻기어 나의 일상이 맑아진 듯하다. 

좋은 친구라는 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의심 없는 믿음이다. 또 서로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진정으로 더 축복해준다면 우정의 도자기는 더욱 빛날 것이다. 제일 가까운 친구가 나를 알아주지 못할 때 얼마나 야속한가? 쌓이는 야속함과 배신은 어떤 믿음의 두께도 녹이고야 만다. 

우정은 화초처럼 관심을 기울여야 소중한 꽃을 계속 피울 것이다. 메이와 가부처럼 소중한 비밀 친구 하나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친구에게 줄 동화책 한 권을 산다. 친구야, 우리 순수했던 그 마음을 잃지 말자꾸나. 나란히 앉아 둥실 떠오르는 새해의 아름다운 첫 보름달을 마주 보기 위해 나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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