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 스파르타가 강자로 떠오를 무렵 그 중심에는 리쿠르고스가 있었다. 시민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고 화폐개혁, 청년 교육 등으로 국가의 기본 틀을 다지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탄탄한 기초에 힘입어 스파르타는 기원전 143년 로마에 복속되기까지 약 7백년 간 존속할 수 있었다.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에게 무릎 꿇은 아테네를 감안하면 적어도 존속 기간과 패권 보유 기간 면에서 스파르타는 아테네보다 한 수 위였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던 리쿠르고스는 임신 중이던 형수가 아들을 출산하면 왕위를 물려주고 단지 보호자로서 국정을 돌보겠다고 선포한다. 그는 그렇게 여덟 달 동안 왕위를 지켰을 뿐이다. 그의 애매한 지위로 인하여 시기와 분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그는 미련 없이 해외로 떠나 각국의 정치제도를 두루 살펴보게 된다. 그 후 시민들의 부름을 받아들여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나라 체제를 개혁하고 시민들의 기풍과 습관, 생각까지 정교하게 바꾸는 작업에 돌입한다.

모든 개혁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델포이 신전으로 향한다. 왕과 의원들 그리고 시민들에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체제를 지속하고 지키겠다는 맹세를 받아냈다. 그는 시민들이 그에게 한 맹세를 뒤집지 못하도록 신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리쿠르고스는 자신이 제정한 법률이 변함없이 후세에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국가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내려놓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스파르타 시민의 수호자로 죽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단식하며 죽음 속으로 태연히 들어갔다. 자신의 죽음이 나라에 유익할 수 있으며, 시민들에게는 의미 있고 고결한 행위로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만으로도 그는 행복했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서 그 후 열네 명의 왕을 거치는 동안에도 스파르타는 그가 확립한 체제를 5백년 동안 이어갔고 고대 그리스 지역의 패권을 유지했다.

웬 뜬금없는 이야기냐 싶겠지만, 조금 늦은 점심·저녁을 하는 것에 불과한 걸 가지고 ‘좌파 독재 저지 및 심판을 위해’ 국회에서 무기한 단식 릴레이 농성을 한다고 떠드는 국회의원들의 ‘눈물겨운’ 기사를 보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이 리쿠르고스였다. 

그들이 보여준 블랙코미디는 지고한 가치를 위해 목숨 걸었던 숱한 단식농성에 대한 모독이자 조롱이다. 단식이라는 용어로 농성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 것이 유감스럽다는 그들의 해명은 더 가관이다. 하긴 투쟁하면서 건강까지 챙겼다는 한 의원의 고백은 그나마 솔직하다.

당신이 답인 상황에서 질문을 해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변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당신이란 뜻이다. 세상이 당신에게 무례한 게 아니라 당신이 세상에게 무례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세상이 당신을 조롱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세상을 조롱하고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간헐적 단식은 5시간 30분이 아니라 최소 16시간이 기본이다. 1년 동안 시도해봐서 아는데 아랫배가 쏙 빠지는 효과는 확실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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