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결국 1.0명 이하로 기록될 전망이다(2018년 통계청). 역대 최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6~0.97명 사이로, 출생아 수는 32만5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굳이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해보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의 평균이 1.68명이었으니 확실한 꼴찌임에 틀림없다. 그야말로 인구절벽의 시대다.

출생아 수 30만명대는 인구학자들 사이에서는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진다.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한해 출생아수는 100만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2002년에는 49만명으로 뚝 떨어지더니, 2017년 36만 명, 2018년 32만명 대로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세대 만에 출생아 수가 반 토막으로 줄어든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뿐이다. 놀라운 기록이다.

상황이 워낙 위급하다 보니, 여성들이 왜 출산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아예 접어둔 채, 각 지자체마다 출산장려수당을 높이고 보편적 아동수당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형국이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출산율이 올라갈 것인가? 정말 그러리라 믿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의 수당지급 중심의 출산장려정책이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바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잠시 숨고르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올해 춘천에서는 소셜 리빙랩 프로젝트 13개가 진행 중이다. 그 중에서 춘천여성협동조합의 ‘누구나 평등한 시작, RE마더박스’ 프로젝트가 이목을 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수당적 접근 대신 해외사례인 마더박스를 한국형 마더박스로 디자인하여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따뜻한 마을복지를 경험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더욱 눈길이 가는 대목은 중고출산물품을 매입하여 이를 다시 출산꾸러미로 만드는 친환경 마더박스를 출산가정에 제공한다는 점이다.

마더박스는 핀란드에서 시작된 예비 엄마에게 주는 선물꾸러미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국가의 철학이 잘 투영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상자 안에는 옷, 겨울용 장갑과 신발, 침낭과 모자 등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겉옷부터 내복까지 잘 구비돼 있다. 한철 옷이 아닌 핀란드의 4계절을 모두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옷들, 갓난아기에게 읽어주는 책, 목욕물 온도를 잴 수 있는 온도계까지! 또 하나, 선물이 담겨온 상자는 매트리스가 깔려있어 아기 침대로 사용하게 되니, 역시나 산타클로스의 나라는 선물의 디테일이 다르다.

그런데 춘천 ‘RE마더박스’는 기존의 중고출산물품을 매입하고, 이를 다시 재활용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자녀 공동양육의 책임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아이와 함께 다니기 좋은 장소를 지도로 만드는 작업이 그중 하나다. 첫 번째 선물의 주인공이 여섯째를 낳은 가정이라니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소셜 리빙랩, 변화를 위한 지역실험은 그 자체로 즐겁다. ‘당신의 아이를 국가도, 지역사회도 함께 키우겠다’는 굳건한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 위에 시민의 신뢰가 함께 한다면. 많이 늦었지만, 우리 마을에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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