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클잎

《노인과 바다》에서 만났던 문장을 곱씹으며 시인과 카페를 만나러 간다. 노인과 바다, 시인과 카페.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 언덕을 올라가는 내내 어째서 그 두 가지 생각이 서로 교차하며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까닭을 댈 수는 없다. 그저 간간이 보아온 시인의 모습에서, 꿋꿋한 모습이 한결같아, 그 흔한 엄살 소리 한번 들을 수 없이 자신에게 짐 지워진 생과 정면으로 마주 서서 드잡이하는 모습만 지켜보아왔던 터라 그런 모습에 눈 익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속 짐작으로만 그렇게 가늠할 뿐이었다.

정클입 시인                                                 김예진 시민기자
정클입 시인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카페. 춘천문화예술회관 동쪽 뒤편 고갯길 정상에 오뚝하게 자리를 잡은 카페 ‘클잎 Jung’은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은은한 음악과 커피 향이 한가로이 공중에서 떠돌고 있었다. 유리문 밖에서는 오래 지속하던 겨울 가뭄 끝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살눈에도 못 미치는, 성긴 눈발이 푸슬푸슬 흩뿌리다 말기를 거듭할 뿐이었다.

카페 문을 들어서자마자 환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정클잎 시인이 나와서 맞는다. 얼굴이 아침 햇살을 받은 해바라기 같다. 이 엄동설한에 무슨 뜬금없이 해바라기라니! 그러나 그 얼굴에서 발하는 광휘는 해바라기의 눈부시게 서럽고 환한 빛 덩어리보다 오히려 찬연함으로 더 빛나 보였다. 문득 상념처럼 든 생각은 시인이 자신의 고단한 생으로 그것을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정 시인은 편모 가정의 가장이다. 이쯤이면 시인의 삶에서 그간의 삶의 편력은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생활 전선에서의 생계 모색을 위해 몇 번의 전업을 거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생을 바라보는 생각이 더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지치기도 해 그때마다 여러 번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전에는 송암동의 한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여성 의류 판매업에도 손을 댔었다고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무모함이 오히려 선택한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지금의 카페 운영 또한 그에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삶의 좌우명 같은 것을 물었더니 

“글쎄, 언제나 스스로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기는 하다. 실패할 것을 가정한다면 시작도 하지 말라. 하는 말쯤일 것 같다. 이제껏 언제나 그렇게 살았다.”라는 대답을 선뜻 내놓는다. 덧붙여 “지금은 손이 엄청 고와졌어요”라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앳된 소녀의 얼굴을 무색케 한다. 그간 세월 속에서 이처럼 눈부신 삶의 빛을 얼굴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생각의 결, 곧은 결기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인이 올해에는 또 고단한 일상에 짐 덩이가 될 것이 분명한 일거리를 맡았다. 올해 1월, 전임 회장의 임기 만료에 따라 2년 임기의 강원민예총 문학협회장 겸 춘천민예총 문학협회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문학협회장으로 선임된 것을 축하하며 새로 선임된 문학협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예술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생활에 배어들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운영하는 카페.     김예진 시민기자
예술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생활에 배어들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운영하는 카페.      김예진 시민기자

“전임 회장이 이끌던 기존의 틀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해 어디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가운데 회원 각 개인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발표의 장을 더 넓히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이렇게 대답하는 시인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진다. 따라 웃으며 이 시인은 뭐든 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의 공간적 의의로 옮겨갔다. 

“한마디로, 문화 예술을 지역 공동체가 함께 호흡하는 마을 사랑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정 시인은 앞서 운영하던 음식점 ‘돌담’에서도, ‘작은, 마당 음악회’라는 문화 나눔 행사를 기회가 될 때마다 판을 벌이곤 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제대로 한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페에서는 매달 1회 ‘예술을 마시는 날’과 ‘그믐달 시 낭송회’라는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예술을 마시는 날’ 행사는 매달 미리 카페 앞에 공지하고 있고, ‘그믐달의 시 낭송회’는 매달 그믐달이 뜨는 날에서 가장 가까운 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에 진행한다고 한다. 카페 운영에 사회적 역할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얼핏 느껴졌다. 

“카페가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스스로 경계를 짓지 않는 예술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예술의 순환적 소통을 통해 문화 예술의 저변을 강화하는, 그래서 누구나 참여하여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라는 말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소통이라는 대의명분에 공감하고 재능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참여 예술가들에게 감사하다. 예술과 생활은 서로 돌려주고 돌려받는 관계가 아닌가? 그것에 동의해줘서 고맙다.” 

시인 정클잎의 문학적 기반과 삶의 기반인 카페를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목표가 궁금했다. 

“문학은 숨통이고 시는 숨이다. 나는 그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숨길이다. 그리고 카페 운영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포장되지 않은 생활 주변의 예술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생활에 밴 당연한 하나의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인을 만나러 오르던 고갯길에서 나를 떠나지 않던 생각의 연관이 시인과 작별하고 나설 때 조금 알 것 같았다. 시인과 시인의 바다가 날이 갈수록 더 풍성하고 윤택해지길 바란다.  

  유기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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