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나에게 3·1 운동은 어떤 의미인가?

3·1절은 단순히 하나의 기념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3·1운동은 대한민국의 건립기반을 만든 사건이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은 과거의 한 시점에 존재하다 지금은 사라진 죽은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재를 관통해서 미래를 조망하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다. 그렇다면 3·1 운동 100년 후를 사는 나는 3·1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춘천사람들》은 춘천시민의 릴레이 기로를 통해 이를 풀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김설훈(강원대 4년)
김설훈(강원대 4년)

1919년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고 이를 기념하는 전국적인 물결이 파도치고 있다. 2019년 어떤 의미로 3·1운동을 기억할 수 있을까? 잠시 눈을 감고 100년 전으로 돌아가 만세를 외쳐본다.

만세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우리 가슴 속에 파고든다. 그 당시 민중이  목 놓아 외쳤던 ‘대한독립만세’는 자주의 외침과 민주의 함성이었다. 일제의 수탈과 억압으로부터 독립된 나라를 만들어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우리는 3·1운동으로 이루고자했던 자주독립의 길에 서 있는가? 진정으로 독립된 국가가 되어 이를 기념할 수 있을까?

최근 ‘한미방위비분담금협상’이 다시금 체결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자국에 외국군이 연이어 주둔하는 것을 막으려하지 못할망정 1조원을 내다바쳐 불평등한 군사동맹의 생명줄을 유지하려는 상황은 자주독립의 길이 아직 우리의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지난 1월 28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의 상징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故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어떤 말 보다 ‘일본에 대한 분노’를 외치며 생을 마감하신 마지막은 매국적인 2015년 ‘한일합의’가 아직 존재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외침’이 필요하다. 새로운 구호가 아닌 ‘독립의 주체’가 누군지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딘지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동북아정세와 함께 북미관계를 선도하는 남북의 통일세대. 노동, 먹거리가 존중받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이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자주의 흔적을 지우고 은폐하려는 매국, 수구세력의 힘을 넘어서는 주체다. ‘독립’되어 있지만 하나로 연결된 운동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외침’ 즉 연대의 힘으로 미래를 준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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