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3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의 뒤를 잇는 가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르첼로 알바레즈(Marcelo Alvarez, 1962- ). 그의 첫 내한 공연 소식을 전하는 뉴스마다 그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고명처럼 올려져 나온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가업인 가구공장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은 사회인이라면 보통사람들의 삶과 거의 비슷하다 할 만 하다. 하지만 서른 살 무렵 그의 인생이 방향을 틀며 움직였다. 아내와 장모의 권유로 들어선 오디션 장에서 테너 리보리오 시모넬라(Liborio Simonella)는 그에게 (보통 오디션이 그렇듯이) 이탈리아 가곡을 불러보라고 주문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디스코 장을 누비고, 퀸(Queen)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좋아하며 20대를 보낸 젊은이가 ‘남 몰래 흐르는 눈물’ 같은 이탈리아 가곡을 알 턱이 없었다. 얼떨결에 불려나온 그는 난감해 하며 아르헨티나 군가를 불렀단다. 하지만 동화가 시작되려 했는지 시모넬라는 그의 목소리에 감탄했다.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향을 떠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간 그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 앞에서 오디션을 본다. 거장으로부터는 “젊었을 때 나를 기억나게 한다. 이 젊은이는 가슴으로 노래를 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루치아노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콩쿠르 결선 무대에 그를 초청했다.

이와 같은 거장들의 격려와 지지 아래 그는 6천 달러(약 600만원)를 손에 쥔 관광객 신분으로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 유스호스텔에 머물며 음악 공부를 한다. 얼마 후 그는 극장들을 하나하나 ‘접수’하며 유럽 오페라 시장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마르첼로 알바레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 연관 단어는 ‘사다리’와 ‘경쟁’이었다. 담장 위에 올라간 거장들이 타고 왔던 사다리를 넘어뜨리지 않고 밑에 있는 젊은이가 타고 올라올 수 있도록 놔뒀다는 것, 젊은이를 위로 올려 담장 너머의 넓은 세상을 보게 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젊은이가 기꺼이 경쟁을 즐겼다는 점에서 나는 감동한다. 

하지만 꿈꾸듯 멍한 눈을 한번만 깜빡이고 나면 대한민국이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횡횡해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의 골은 해자(垓字)로 삼아도 될 만큼 건널 수 없게 깊고 넓게 파인 땅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자신이 기어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며 신분차별을 외치고 귀족과 노예의 관계를 정당화한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사회에서 기회의 사다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사회계층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이 타고 올라갈 사다리는 존재할까, 궁금하다.

사다리를 걷어차며 남들과 경쟁하라는 것과 사다리로 올려주며 기꺼이 경쟁을 즐긴다는 것은 차이가 크다. 내가 이해하는 한, 강요받은 경쟁은 노예의 길이고, 즐거워서 스스로 뛰어든 경쟁은 자아성취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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