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나에게 3·1 운동은 어떤 의미인가

3·1절은 단순히 하나의 기념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3·1운동은 대한민국의 건립기반을 만든 사건이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은 과거의 한 시점에 존재하다 지금은 사라진 죽은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재를 관통해서 미래를 조망하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다. 그렇다면 3·1 운동 100년 후를 사는 나는 3·1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춘천사람들》은 춘천시민의 릴레이 기로를 통해 이를 풀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오동철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
오동철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

3·1운동 100주년,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 주변에 남은 일제잔재는 무엇이 있는지, 일제 잔재 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잔재 청산, 또는 청산 안 된 부분이 현대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때다. 광복 후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건재하다는 평가를 받는 강원(춘천)신사는 청산이 안 되는 과정에서 당시 춘천의 지식인들과 관리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강원 신사 자리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 나라의 변란 발생 시 위급상황에서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이궁(離宮)이다. 그러나 한일 강제병합 이후 이궁에 신사가 들어서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사라지고 왕이 사용하려던 건물은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꾀하는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희생 되었다.

한일 강제병합 이전부터 진행된 지속적이고 치밀한 민족정기 말살의 산물중 하나가 춘천 이궁을 헐어내고 신사를 건립하는 것 이었다. 현재의 강원도청 전체부지 면적이 1만5천여 평 인데 1916년 일제가 춘천신사를 건립하기 위해 만든 토지 조서에 1만2천986평을 편입 시킨 것은 신사건립을 통해 춘천 이궁을 없애려한 의도가 확인되는 부분이다. 

광복 후 춘천의 일제 잔재 청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원(춘천)신사는 도서관으로 변경되며 원형이 보존됐고, 7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일부에서 흔적이 확인된다. 봉의산 정상에는 아직도 원인을 모르는 일본 비석이 건재하다.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 남은 일제 잔재는 꽤 있다. 그러나 흔적으로 남은 잔재보다 더 중요한건 우리 마음속에서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었느냐이다. 3·1운동 100주년, 건국 100주년을 맞는 오늘 지나온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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