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유하야, 생일 축하한다.

직장 옮기는 문제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아 마음이 흔들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일이 언제나 그랬지, 모든 길은 곧게 뻗어 있지 않고 그 길 위론 늘 바람이 불어대지. 흔들리고 돌아가고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숨 한번 쉬고 나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겠지.

지난 2년간의 사회생활에서 넌 무엇을 배웠을까?

상사에게 아부하고, 줄 설 라인을 고르고, 동료와 경쟁하는 게 직장생활의 전부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쓸쓸할까. 다행히 너의 DNA 속엔 아마 그런 게 없을 거야. 그래서 더 외롭고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난 네가 그 외롭고 힘든 길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선택했음을 알기에 더 사랑하고, 더 신뢰하고, 더 많이 응원할 거야. 

긴 터널 끝에서 만나는 빛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 어둠을 참아야 하는지 몰라. 그 터널이 얼마나 긴지, 얼마의 시간을 달려야 그 어둠이 끝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해. 그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다는 것. 우리는 터널에 갇힌 게 아니라,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것. 그 믿음만이 우리를 숨 쉬게 하고 싱싱하게 할 거야.

너도 간간히 버킷리스트를 생각하는지.

싱거운 삶에 치는 소금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을 태우는 불꽃처럼 버킷리스트를 가슴에 넣고 다니는지. 소금 한두 방울로 맛이 달라지는 요리처럼, 성냥불 하나가 어둠에 갇힌 발밑을 위로하는 것처럼 버킷리스트를 떠올리면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지고 가슴은 마치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난 것처럼 콩당콩당 뛰지 않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걷기.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 오로라 관측하기.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빛 보기…. 

네게도 버킷리스트가 있니?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에는 너무 젊어서 없을 수도 있겠네. 어쩜 버킷리스트를 생각하지 않는 삶이 더 건강한지도 몰라.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버킷리스트 만들기는 늙어갈수록,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삶이 심심해질수록 찾게 되는 보톡스 주사 맞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그렇다고 버킷리스트가 우리에게 금지약물은 아니잖아? 다만 인정해야 하는 건 하나 있지. 이른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 달성하고 싶은 목표 목록인 버킷리스트를 순수한 꿈으로 채워야지 그것마저 사회에서 교육받은 대로 경쟁을 집어넣고 스스로 분발하기 위한 업그레이드 촉매제로 삼는다면 삶이 우습고 추해 보인다는 거, 알지?

아침 식탁에서 들려주는 현자(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 때론 한 순간의 영감이 한 생애의 경험과 같다는 것을.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정녕 오솔길이었으면 좋겠다. 길가엔 꽃이 피어 있고,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엔 꽃과 나무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그때마다 발걸음 멈추고 심호흡하며 풍요로운 생각과 만날 수 있는 그런 오솔길을 네가 가고 있다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너의 생일을 축하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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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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