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경제적 동물이 사회적 동물을 키울 수 있을까
[월요편지] 경제적 동물이 사회적 동물을 키울 수 있을까
  • 이충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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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가 축구와 관련해서 받은 복지 구간은 딱 두 번이었다. 도대체 축구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가 돼야 복지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구기 종목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연 잔디구장 하나만으로도 천국은 완성된다. 

천국의 계절은 군복무와 독일 유학으로 찾아왔다. 카투사 복무로 인해 경험한 캠프 캐롤 안에는 심지어 야간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조명탑까지 갖추고 있어서 여름밤에는 매일 즐거운 축구 집합이 걸렸다. 부대 내 소방서에 신고만 하면 되었다. 동시에 옆 야구장에서는 미군들의 야간 경기가 월드 시리즈인양 열리고 있었다.

미군 부대의 잔디 구장이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춘 '럭셔리'였다면 독일의 동네 구장은 검소한 편이었다. 하지만 동네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주말마다 유학생들끼리 축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테니스보다 축구를 사랑했다. 2명이 뛰는 테니스 코트보다 22명이 뛸 수 있는 축구장이 경제적이라는 주장이 만연한 것도 그들에겐 자연스러웠다. 

내 20대를 관통하는 가장 경이롭고 우울한 발견이었다. 미군들에게도 독일 국민들에게도 스포츠가 이미 복지의 영역이라는 사실.

“바이에른 캠퍼스에 사는 선수들은 어떤 비용도 내지 않는다. 우리는 선수들에 대한 모든 비용을 투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 최연소 나이에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정우영 선수의 소식이 쏟아진다. 그가 생활하는 바이에른 캠퍼스에 관한 기사에서 핵심은 그 다음에 있었다. 우리의 복지와 교육 그리고 의식 구조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수들에게 빨래는 직접 하도록 한다. 축구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하는 것 역시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유총이 ‘유치원 3법’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등에 반대해 ‘개학연기’를 주도하고 집단폐원을 거론하며 유아와 학부모를 위협하다가 백기투항했다. 사립학교법 상 학교인 유치원이 국가에게 임대료를 달라는 그들의 주장에 국민들이 등을 돌린 결과였다. 그들에게 교육은 명목이었고 목표는 이익이었다. 교육에 대한 그들의 투자는 상당 부분 시혜를 바라는 것이어서 단기간에 돌아오는 반대급부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교육기관을 자처함으로써 사회 각 부문의 다양한 특혜를 누릴 수 있던 시절은 갔다. 교육은 복지다. 

복지는 평등을 생각하고 시혜는 목표를 조준한다. 자신이 배운 가치를 당당히 가르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다. 공부하러 온 외국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의 기록을 보여주며 반성하는 독일인의 힘을 기억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학습자를 레밍의 무리에 넣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사회화 교육의 출발점에 선 원아들에게 이익 행태부터 가르치려 했던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교육 복지는 건강한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가르치는 것에 모아져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의 기술이 아니라 공생에 필요한 가치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세대는 유치원생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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