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종남

“23일 평양역에서 출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용 열차는 중국 단둥역을 통과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던 때 소설《단둥역》을 집필한 최종남(73) 소설가를 만났다.  

최종남 소설가
최종남 소설가

최 작가는 ‘꿈동이’ 인형극단의 해외공연을 주선하며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단둥역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는 도시로 신의주청년역과 철도가 연결되어 있다. 손에 잡힐 듯 북녘 땅이 보이고 조선족을 비롯해 한국인 3천여 명, 북한 동포 2만여 명이 거주해 거리에서도 쉽게 북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최 작가는 북한요리를 파는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소양강 처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소설을 구상했다. 반전문학이 아니라 통일문학이라 했다. 이별의 장소가 되어버린 단둥역에서 벌어지는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서글픈 사랑이야기를 통해 반목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단둥역》은 6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됐다.

전상국 소설가는 ‘털털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낸 춘천 생활의 보고서’라고 했다. 작가에게 춘천은 어떤 의미일까?

“춘천은 문학적 상상력의 밭이죠. 풍요로운 마음의 고향이지만 안일한 창작공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소양로에서 태어났어요. 춘천에서 춘천교대를 마치고 관동대 사대를 다니느라 강릉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지만 강원고등학교에서 퇴직하고도 지금껏 춘천에 살고 있어요. 가난으로 얼룩졌던 한 때는 춘천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와 타 지역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현실에 녹아있는 모든 삶의 흔적들은 제 작품의 소재가 되어 언젠가 춘천에서 있었던, 있을 수 있는 일들과 언젠가 마주쳤을 춘천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죠. 《단둥역》에 수록된 작품들도 결국 춘천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허나 제가 오지랖이 좀 넓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에 의지와는 다르게 많은 작품을 쓰지 못했어요.”

조용한 미소는 겸손했다. 자신을 주변머리 없는 토박이라고 하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토박이로 살아오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며 뿌린 기름진 문학적 텃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6년~1987년 강원일보에 연재했던 《겨울새》가 2004년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로 뒤늦게 출간된 것은 아쉬웠지만, 이듬해 강원문학상을 수상하고 문예진흥원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 여사’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넘어 일제강점기와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북쪽이 고향인 어머니의 삶은 소설의 개연성을 높여주었고 수많은 시간 발로 뛰면서 찾아낸 절절한 사연을 쓰면서 눈물 흘린 날도 많았다. 

1990년대부터 2003년 사이에는 《조선왕조 속의 강원도》, 《강원의 명문세가》를 신문에 연재하며 오랜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나이테가 늘어가며 깊어진 역사의식을 문학 속에 녹여냈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춘천의 자연환경에 문화예술이 흐르는 생명력 넘치는 물의 도시를 만드는 일에도 기꺼이 시간을 냈다. 문학협회를 이끌고 김유정 문학촌이 개관하는 시기부터 열정을 쏟았던 몇 년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타인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지역사회 공동체 문제에 품을 열었다. 그는 작가 최종남만은 아니었다. 

사람 좋아하는 작가는 산문집 《사람》 시리즈에서도 춘천사람들을 담아내고, 여기저기 활동하며 부르는 곳이면 마다 않고 다니며 술 담배를 즐기다 보니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건강이 좀 나빠졌다. 만성폐질환으로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며 사회적 활동은 거의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어렵사리 생계를 꾸리면서 ‘월사금’을 제 때 납부한 적이 없었어요. 중학교 시절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미술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재료비 걱정에 포기하고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문예부에서 활동했죠. 학창시절 내내 용돈은 스스로 벌어 써야 했기에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교대로 진학했고 나중에는 사대도 졸업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창작에 매달릴 수만도 없었고, 창작에 대한 치열함은 시간과 관계의 관리가 중요한데 자신에게는 엄격하지 못하고 부실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젊은 친구들을 보면 할 수 있을 때 다부지게 몰두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제자들의 이름을 부를 때면 얼굴이 환해졌다.

“강원고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동료 교사들이었던 최돈선 시인, 노화남 소설가 등과 문예반 학생들을 지도했는데 현재 제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뿌듯하고 고맙죠. 또, 1984년 춘천 YWCA 문예창작반에서 시작한 ‘풀무’ 문학회는 주부들로 구성되었는데 최돈선 시인과 이희수 수필가와 함께 지도했어요. 동인지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문학가로 데뷔하여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도 많아졌어요. 35년간이나 이어온 풀무 문학회가 자랑스러워요.”

학생의 인권과 교권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폭력적인 학교뉴스를 접하는 시대에 스승이 제자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제자들과 문학가로서 동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줄을 세우는 교육자가 아니라 어두울 때 등불이 되는 스승, 길을 잃어 방황할 때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친구이자 제자의 잠재력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어른이 필요한 시대다. 그는 그런 지도자로 커가는 제자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의 소망이, 아니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집필 전의 고통과 집필하며 느끼는 성취감, 탈고 뒤에 찾아오는 후회와 실망. 소설쓰기는 매번 실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마무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성취 뒤에 오는 절망감을 맛보기 위해 작가는 또 다음 작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려야 한다.”

그는 《단둥역》 작가후기에 이렇게 남겼다. 희망과 평화의 펜 끝은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길을 묻는다면, 나란히 걸으며 조언해 줄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김예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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