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언니~”, “여사님”, “오빠”, “쌤”, “사장님”...... 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를 칭하는 다양한 ‘호칭’들. 아무 거리낌 없이 툭툭 던져지는 자연스런 호칭이 있는가 하면, 뭐라 부르는 것이 알맞을지 난감한 상황도 많다. 다양한 직함이나 역할, 입장들이 뒤섞여 있을 때는 더더욱 어렵다. 

나만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상대를 칭할 때의 어려움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불편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한 사람인데, 상황별로 대하는 관계의 다면성으로 제2, 제3의 ‘나’를 상기시켜주는 것이 ‘호칭’에서부터 출발하기에 불가피한 면도 없지는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심지어는 거슬리는 ‘호칭’으로 내가 다른 이들 사이에서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이 여러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집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대신하게 되면, 아주 정중한 어투를 써도 맘에 들지 않는다. 쓰는 입장에서야 지금까지 함께 살아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듬뿍 담겼겠지만, 듣는 순간 ‘내가 집 지키는 사람인가’ 하는 삐딱선이 발동하는 건 사실이다. 

수많은 관계를 담아내는 언어인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민들레의 주제이다 보니 2월 모임에서는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거나, 기분이 상할 때의 호칭을 각자 적어 빙고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이’, ‘거기’, ‘아무개’부터, 흔히 쓰는 ‘이모’, ‘삼촌’, ‘어머님’, ‘아버님’, ‘오빠’의 상황별 해석과 오류의 발견도 너무나 많았다. ‘여사님’, ‘사장님’ 등등의 호칭도 본연의 뜻과 달리 특정 직업에서 대체되어 사용되는 현실에도 공감이 갔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적절한 호칭을 쓰고, 적절히 불릴 수 있는지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돌아보니 일상적으로 내가 불리는 호칭들도 생각해보면 적절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고, 나 또한 상대의 입장에서 알맞은 호칭을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학교현장에서 ‘선생님’과 ‘쌤’의 호칭을 두고 이슈거리가 되었던 일이나 성별, 문화적 요소까지 거들다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호칭에는 참 많은 것이 담겨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움도 생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각각의 관계를 정의하고, 사회적으로는 한 사람의 위치를 지정하기도 하는 언어라는 글의 맥락을 함께 하면서 쉽게 지나칠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자 ‘우리들은 서로에게 어떻게 불리면 좋을까?’, ‘나의 이름대신 불리길 바라는 호칭은 무엇이지?’ 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주변에서 보듯 별칭을 통해 수평적인 서로의 관계를 만들고, 스스로가 정의하는 호칭을 알리는 것으로 적극적인 호칭 정리(?)를 하는 것도 보인다. 혹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써도 무방할 영어의 ‘You’, 일본어의 ‘~상(さん)’처럼 ‘~씨’에 대해 중립적으로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도 호칭에 대한 부담은 좀 덜어질 것 같다는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말에 문득 9살 아들의 별칭을 부르자, 그는 호칭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어려서부터 식구들 안에서 부르는 아이들의 별칭은 첫째 ‘사랑이’, 둘째 ‘희망이’, 셋째 ‘행복이’였다. 태명이기도 하고, 아이들에 대한 바람이 담긴 호칭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불리는 이름처럼 자라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둘째가 하늘 여행을 떠나면서 막내는 인형에 ‘희망이’를 붙여 보살피곤 했는데, 자기를 ‘행복한 희망이’로 불러달라고 한다. 제딴은 자기가 형의 동생인데 형이 쓰던 별칭을 합쳐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스스로도 대견스러웠는지 놀러나가면서도 현관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들여다보며 다시금 인사를 한다. “행복한 희망이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한 호칭이고 고마운 아들이다.

*춘천민들레모임 :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7시에 로하스카페 나비(칠전동) (문의:010-9963-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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