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 (춘천영화제 조직위원장)
김혜선 (춘천영화제 조직위원장)

2시간 분량의 총회 녹음파일을 듣고 또 들으며 글자로 옮기고 구어체를 다시 문어체로 바꾸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부드러운 제스쳐의 완곡한 표현을 단순한 글자로 옮기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할 일이다. 한 장 한 장이 춘천영화제의 기록이자 발자취가 될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2018 춘천영화제’는 예년보다 많은 연인원 2천500명 이상의 관객이 참여했다. 작년 5월, 춘천상상마당과 공동주관한 시네마레이크 상영회를 시작으로 ‘다큐 공존’ 상영회와 본 영화제를 진행하고 11월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같은 달, 북한유소년축구단의 춘천 방문을 기념해 북한영화 상영회를 진행했고 문화복지 소외계층 주민들을 초대해 음악다큐영화 상영회를 진행했다. 상영회를 기획하고 사람들과 협업하며 마음을 모으는 연대의 뿌듯함은 언제나 즐겁다.

한 해를 돌아보니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입원해 계신 실향민 아버지께 북한영화 홍보물이라도 보여드리고 싶다며 부탁하던 한 장년아들과 대접 받는 기분이 들었다며 환하게 웃으며 돌아가던 자활센터주민들이 떠오른다. 상영관에서 유난히 금슬이 좋아보였던 70대 노부부도 떠오른다. 영화제도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7년 전 쯤의 일이다. 안마산 열병합발전소 건설 소식을 접하자마자 분기탱천해서 반대운동을 펼쳤다. 건설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가 피켓과 가판대를 펼쳐놓고 인구밀집지역인 안마산에 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시민들에게 반대서명을 받고 건설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렸다. 굳은 머리로 발전소의 해악을 공부하고 한의원 침을 맞아가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길거리로 나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설마 그럴 리가요” 라고 반응하던 시민들 사이에 발전소 건설소식이 알려진 후 자신들의 일처럼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힘이 솟았었다. “대신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 쑥스러운 듯 김밥과 음료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가는 마음들이 고마워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 일을 신나고 재미있게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 누군가가 ‘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춘천시장의 포기를 받아냈고 시의 발표를 기다리던 시청 앞 광장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제는 조금 다르다. 온도차뿐만 아니라 평가도 다른 것 같다. 흔하지 않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라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영화제도 안마산 건설반대운동처럼 겁 없이 ‘사람’으로 시작한 일이라 사람들에게서 응원을 받고 싶다. 

올해도 풍년을 꿈꾸는 농부의 결기로 즐겁게 도전할 생각이다. 많은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강원도민과 춘천시민에게 영화문화를 알리고 참여를 끌어내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성격과 필요에 걸맞게 다각도로 모색할 계획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영화제로 미래 영상인이 될 재목들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여러 면에서 소통하는 영화제가 올해 목표다. 곧 방향이 결정될 것이고 전문성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구조로 변환하고 시상과 관객의 관심부분 섹션도 신설할 예정이다. 

모든 축제가 족히 10년은 지나야 인지도가 쌓이고 조직을 갖춘다고 한다. 아직 반이 지났을 뿐이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응원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함께 해온 이사회 임원진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관객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편하게 춘천영화제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달릴 생각이다. 십여 명의 직원이 북적거릴 사무실에 김밥과 음료를 사들고 응원 차 방문하게 될 그 날을 상상한다. 기분 좋은 영화를 즐기듯 당당하게 축제를 즐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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