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제63회 ‘신문의 날’이었다. 1896년 최초의 민영지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이다. 1957년 6월29일 지금의 ‘한국신문협회’ 전신인 ‘한국일간신문발행인협회’가 발족하여 논의한 끝에 1959년 4월6일, 《독립신문》 창간일인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결정·선포했다. 

‘신문의 날’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신문이라는 매체의 기념일인 만큼 매년 잊힌 채 지나는 법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올해 100주년을 맞는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11일은 종종 잊혀 왔다. ‘한 세기’라는 숫자에 사람들이 부여하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면 올해도 예년과 같이 특별한 기림 없이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3·1절이라는 국경일은 있어도 4·11절이라는 국경일은 없는 사정이 그 근거다.

국경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헌법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적고 있듯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 운동 정신을 계승했음에 틀림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적 토대는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과 국가 공동체의 독립을 외친 보통 사람들의 자주정신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의 날’인 독립신문 창간일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은 나흘 간격으로 붙어 있긴 하지만 그 성격의 차이는 이들 사건의 발생 연도 차이인 23년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멀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립신문에 가담한 사람들이나 지향하는 내용이 1919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그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립신문은 미국 유학을 한 서재필에 의해 주도됐는데 유학 당시인 1800년대 후반의 미국 신문은 기업 확장을 위한 상업주의가 팽배해 있던 때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문을 보게 하려고 어느 한 정파나 사람, 지역의 편을 들기 보다는 중립과 객관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던 시기다. 

독립신문도 창간 사설에서 이런 가치관을 표방하고 나온다, “대군주폐하와 조선정부와 조선인민을 위하는 사람들인고로 편당 있는 의논이든지 한쪽만 생각하고 하는 말은 우리 신문에 없을 터”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요즘 신문의 사회면 기사에 실릴만한 범죄기사도 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도 했다. 외세 침탈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긴박한 시대 상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평가를 들을만한 내용이다. 

독립신문이 민주, 자주, 독립을 위한 계몽운동에 나선 일은 나름 평가 받을만하다. 하지만 긴박한 시기에 맞지 않는 상업주의와 중립성을 지향한 노선은 ‘무늬만 독립 추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내용이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이 죽기를 각오하고 만세를 부른 민중의 결기에 바탕을 둔 내용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국가로부터 창립자금을 도움 받았던 탓에 국가에 의해 폐간되는 결과를 빚게 된 점도 현재의 신문들이 그리 본받을만한 일은 아니다.

이런 내용을 되돌아보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이즈음 오늘 날의 대한민국, 강원도 신문을 생각해보게 된다. 말할 채널을 스스로 갖지 못하는 많은 보통사람들의 언로를 열어주는데 신문은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자성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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