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논평] ‘춘천 푸드플랜’을 부탁해
[이슈논평] ‘춘천 푸드플랜’을 부탁해
  •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 승인 2019.04.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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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시간을 저만치 되돌려보자. 1995년 춘천에는 유기농업에 뜻을 둔 젊은 농민 몇몇과 이에 호응한 시내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온갖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삶을 나누고 농산물을 나누었다. 스스로를 방주공동체로 불렀는데, 시장만능주의라는 대양에 떠있는 작고 단단한 배 한 척을 상상했나 보다. 이 공동체는 21세기로 바뀔 무렵 생협으로 진화했다. 현재의 춘천두레생협이 간직한 협동의 역사다.

조금 가깝게 되돌려보자. 2007년 무렵 ‘로컬푸드’라는 개념이 춘천에 유입되었다. 식량주권이 위협당하는 글로벌한 시대에 지역먹거리 순환체계는 세계인들의 공통된 질문이었고 고민이었다. 한국은 자연스럽게 친환경농업과 지역운동·학교급식개혁운동과 결합되었고 춘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말 사회적기업 하나가 농민·생협·시민사회의 협업으로 어렵게 출범했으나, 공익적 사업에 춘천시의 관심이 없으니 길게 버티기 힘들었다. 사업을 접은 ㈜봄내살림이 걸어온 굴곡의 역사다.

아는 사람은 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친환경무상급식을 안정시켰고, 농업문제를 넘어 지역사회 공동의 사업으로 로컬푸드를 제도화했다. 늘 성공한 것은 아니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경험의 축적은 있었다. 그런데 춘천은? 아는 사람은 안다. 도농복합도시에 강원도의 핵심도시라는 장점을 살리기는커녕 10년간 그냥 날려버렸다. 전국 최악의 무관심 불통 지자체였다. 그 사이 민간사업은 꺾이고 민간운동은 지쳐나가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4년여 전 농협이 등장했다. 로컬푸드 매장을 열더니 춘천로컬푸드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면서 깃발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이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농협은 무조건 안 된다가 아니라, 농협은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먹거리 문제를 풀어갈 리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조합원인 농민도 대상화하는 농협에게 시민이 기대할 것은 없었다. 지역정치와 결탁해 사업을 하나 더 벌이려는 계산속이 뻔히 들여다보였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지방선거 이후 농협의 속셈은 좌절되었다. 가까스로 공공사업의 정상적인 경로가 확보되었다. 

춘천에 ‘푸드플랜’이 세워지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역점사업이고 춘천은 연구용역이 막바지다. 푸드플랜은 지역먹거리 순환체계에 먹거리 복지와 지역의 미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지역먹거리 전략’을 뜻한다. 그러니까 춘천시민들의 먹거리를 시장과 기호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춘천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미래전략을 세운다는 뜻이다. 먹지 않는 춘천사람은 없으므로 춘천 전체의 문제가 맞다. 쉽게 설명하면 로컬푸드의 확장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결식아동들에게 카드를 지원하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콜라를 사먹는다. 이 아이들에게 영양균형이 잡힌 따뜻한 밥 한끼를 따스한 보살핌으로 제공하는 춘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따뜻한 국과 반찬을 배달하고 건강도 살피는 춘천! 시골 할머니 손맛으로 볶음고추장을 만들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할머니들은 더 신나서 더 맛있게 만드는 춘천! 내가 먹는 채소와 감자를 농사지은 농민들의 얼굴을 알고 그곳이 나의 고향이 되는 춘천! 

들어보면 그럴듯하겠으나 지금은 불가능하다. 예산도 없고 법과 제도의 장벽도 높다. 하지만 이런 꿈을 꾸어봄직 하다면, 플랜과 전략을 지금부터 짜 보자는 것이 푸드플랜이다. 몇몇만의 꿈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순간 꿈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매우 길게 보고 모두 함께 가야하는 길이다. 춘천푸드플랜이라는 이름으로는 겨우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춘천에는 이름이 뭐든, 조직이 뭐든 비슷한 꿈을 꿨던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니 참 다행이다.

아, 더욱 다행인 것은 스마트팜밸리사업에 춘천이 탈락했다. 예산 죄다 쏟아 붓고 논란과 불신이 더 커졌으면 푸드플랜은 공염불이었을 것이다. 꿈꿀 여지가 생겨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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