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모 (의사·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
양창모 (의사·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

며칠 동안 미세먼지 농도가 100을 넘다들더니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요즘은 비가 내리면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공기가 좋아져서 소양강변을 따라 달렸다. 숨이 턱에 찰 때쯤 중도 선착장을 바라보는 데크의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산기슭을 따라 돌출된 데크는 마치 사람처럼 서서 강 건너의 중도를 고즈넉하게 바라보고 있다. 수면위에 햇살이 부서지듯이 중도에 빼곡히 들어선 겨울나무들의 가는 선이 아름답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춘천의 모습이다.

춘천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미세먼지가 심하더라도 생활 방사능 수치가 아무리 높더라도 그렇다. 그리고 행여나 레고랜드가 들어서더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도의 저 숲보다 레고랜드가 더 가치 있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간 중도에 배를 타고 드나들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아름다운 춘천의 기억보다 레고랜드가 더 중요하다 말하는 정치가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가 단 하루라도 그 선착장 끝에 서서 건너편 중도의 아름다운 겨울나무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이젠 제법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1년 전보다도 훨씬 많아진 것 같다. 방송에서 떠드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미세먼지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가끔 생각해본다. 방사선도 눈에 보였으면 어땠을까. 방사선 입자에 형광물질이 들어 있어서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면 무색, 두 배가 넘어가면 노란색으로 공기가 바뀌고 세 배가 넘어가면 주황색, 네 배가 넘어가면 빨간색으로 바뀐다면. 그러면 아마도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춘천의 방사능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달리면서 또 상상해본다. ‘휴먼시아’는 무색, ‘롯데캐슬’은 주황색?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퇴계동의 모 아파트는 빨간색? 그렇다면 지금 지어지는 ‘자이’는 앞으로 무슨 색이 될까?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시민운동이 하는 일이라고 믿어 왔다. 우리는 사랑을 볼 수 있다. 아니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인간이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줄 아는 신묘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눈에 방사능이 보였던 것은 내가 내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으면 영유아 검진을 하러 오는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의사가운을 보자마자 울면서 떼굴떼굴 구르는 아이부터 싱글벙글 해맑게 웃는 아기까지 아이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도 있지만 가끔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아이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망울은 늘 한결같다. 아이를 사랑스럽게 보는 사람의 눈에 그 아이 가까이에 와 있는 방사능이라는 위험성이 보이지 않을 리는 없다. 내 눈에도 보이는 것을 아이의 부모들이 보지 못할 리는 없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눈앞에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으며 다시 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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