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강원영상위원회 사무국장)
김성태 (강원영상위원회 사무국장)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련한 그때 기억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지워지고 만들어지고 과장되어 마음 한 구석에 돌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그 돌을 쪼개어 첫 극장나들이의 기억을 꺼내보려고 한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두 종류의 극장이 있었다. 하나는 제작된 영화를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개봉상영극장과 개봉관 상영이 끝난 후 두 개의 영화를 묶어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이었다. 동시상영관은 동네극장으로 일반영화와 ‘에로’ 영화를 번갈아 가면서 상영을 했었다.

그때까지 극장경험이 없었던 나는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동시상영을 하는 동네극장으로 갔다. 어두운 극장 안은 담배 연기와 오래된 매캐한 냄새가 뒤엉킨 괴기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극장의 검은 천장은 어린 내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높고 깊어 보였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크고 두꺼운 자주색 커튼 속에 가려져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스크린과 사방의 벽을 거대한 망치로 두드리듯 울리는 스피커 소리는 흡사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거인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 두꺼운 자주색의 커튼이 천천히 열리고 커튼 뒤에 숨어 있던 하얗고 거대한 스크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영사기에서 레이저처럼 밝은 빛이 스크린에 쏘이면 주위는 침묵과 어둠의 마법에 빠져들어 버렸다. 내 인생 첫 영화의 영사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영화가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초등학교 2학년생을 데리고 홍콩무협과 에로 영화를 보러 가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정창화 감독 작품을 내 인생의 첫 영화로 만들어 주셨던 것에 대해. 

정창화 감독이 누구인가. 1970년대 홍콩영화계에 진출해 그의 대표작인 ‘죽음의 다섯 손가락’으로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홍콩영화 역사를 새로 쓴 장본인이 아닌가. 한국보다 홍콩과 할리우드에서 더욱 알려진 대한민국 감독이다. 세계적인 거장 ‘펄프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정창화 감독을 꼽았고 영화 ‘킬빌’을 통해 ‘죽음의 다섯 손가락’과 정창화 감독을 오마주(homage)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1981년 동네 동시상영관에서 이름 모를 거장을 만난 셈이다. 거장과의 만남은 훗날 운명이라는 끈을 억지로 만들어 영화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특히 30대 이상은) 누구나 첫 영화와 첫 극장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래전 문화도시 춘천은 육림극장, 피카디리, 아카데미 등 다섯 개의 극장이 있어서 많은 춘천시민에게 나와 같은 추억을 남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추억을 간직한 극장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멀티플렉스가 채우고 있다. 추억을 간직한 극장이 춘천시민에게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지금부터 촬영감독의 눈으로 본 영화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보았고,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춘천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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