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은 만들어진 개념, 여전히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야”

지난 10일 춘천시청 민방위교육장에서는 ‘페미니즘이 뭐길래’라는 주제로 젠더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1부에서는 예술단 ‘농음’의 대표인 김지희 소리꾼이 심청가 중 곽 씨 부인, 뺑덕 어미, 안 씨 부인 등 여성인물이 등장하는 대목을 불러 전통적인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 줬다.

2부에서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교양교육대학) 엄혜진 교수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연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시작된 강연이었지만 내용은 진지한 학술적 성격이었다.

엄혜진 교수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누구도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타자를 대상화(특히 성적으로)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엄혜진 교수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누구도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타자를 대상화(특히 성적으로)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이라는 가치는 본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그리스의 경우 평등의 개념은 지금과 달리 남성 귀족은 지식창출의 기능을, 노예는 생산의 기능을, 여성은 번식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보았으며 이후 근대 이성의 발견과 시민혁명을 거치며 현재의 평등 개념이 점진적으로 수립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특히 데카르트가 만인에게 동등한 이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통해 평등의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이러한 사고 역시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주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데카르트적 사고를 뛰어넘기 위해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소쉬르, 푸코, 라캉에 이르기까지 현대 철학자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음을 밝혔다. 

엄 교수는 페미니즘이 평등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에 연속성이 있음을 주장하며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누구도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타자를 대상화(특히 성적으로)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결국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고 양적인 평등이 아닌 질적인 평등을 이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이며 ‘돌봄 민주주의’라고 설명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이 끝나고 《춘천사람들》에서 준비한 질의와 응답이 이어졌다.

 

데카르트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깨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경연 중에 언급한 구조주의자(마르크스, 프로이트, 소쉬르 등)라는 점은 공감한다. 그러나 니체는 주체의 생성의 힘을 주장했다. 구조주의와는 결을 달리하지 않나?

구조주의자라고 칭하기는 어렵지만 현대 페미니즘 이론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포함시켰다. 니체는 이성중심의 담론을 깨뜨리는데 한 몫을 한 철학자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남근중심주의로 여성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웃음) 맞다. 물론 무의식이나 유아기의 거울단계를 설명하면서 여성을 배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신분석학이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이성적 사고를 추락시킨 것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 측면에서 페미니즘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강연에서 특히 라캉의 ‘욕망이론’에 대한 비중이 컸다.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고 현대 여성들이 욕망하는 것들, 가령 미의 기준 같은 것이 사회가 그렇게 욕망하게끔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온전한 욕망 같은 것을 따를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할 뿐이지 않나?

사실 라캉 이론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 여성이 남성중심의 사회적 무의식에서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타자의 욕망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라캉은 그것을 아는 것이 정신분석의 끝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욕망이 누구의 욕망인지 계속해서 발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홍석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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