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2007년 6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다. 부품 협력사에게 부품을 주문하면서도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밝히지 않았고, 보안을 위해서라면 가짜 설계도로 교란시키기도 했을 만큼 공을 들인 제품이었다. 애플이 아이폰의 모든 것을 특허화해 놓은 건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2010년 6월 삼성전자는 역대 최고의 안드로이드 폰으로 불리는 갤럭시S를 출시하며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애플에 도전장을 던졌다. 

2011년 애플은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휴대폰 20년 역사의 역량을 가진, 첨단 기술에 대한 특허만 1만 건 이상 소유한 삼성을 겨냥한 소송이었다. 휴대폰이라고는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애플이었기에 기술 부문이 빠진 것은 당연했다. 둥근 모서리를 가진 직사각형의 제품 디자인과 화면 주변의 검은색 테두리, 격자 형태의 앱 배열 등이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송을 주도했던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2 공개 행사에서 삼성을 지칭해 비난한 ‘카피캣(copycat·모방자)’은 그후 삼성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배상금 규모를 두고 1심, 항소심, 대법원 그리고 다시 1심으로 이어지던 지루한 소송전은 2018년 5월 배심원 평결에서 결정된 6억8천900만달러(약 7천700억원) 배상으로 사실상 끝이 났다. 동지이자 적인 ‘프레너미(Frenemy)’일 수밖에 없는 두 회사에겐 실익이 크지 않고 수억달러의 자문료를 챙긴 로펌이 최종 승자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7년간의 특허 소송을 통해 애플은 삼성에게 ‘추종자’라는 낙인을 찍는 데 성공했고 삼성은 과거 혁신의 상징이었던 소니 등 일본 기업을 제치고 아시아의 맹주는 물론 애플과 전면전을 치를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광고한 비용으로 치면 둘 다 승자였던 전쟁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한국인들이) 애플과 삼성의 특허 소송을 보며 디자인이 갖는 막강한 힘을 처음으로 간접 경험했을 것이다. 산업상 이용 가능한 발명이어야 하고,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진보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특허의 심사 기준을 떠올리면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둥근 모서리라는 그 평범한 디자인 속에 발명과 새로움, 진보성이 들어있었다니…. 단순히 직사각형에 테두리가 둥근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곡률반경(radius) 값까지 일치할 정도로 유사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 소송이었다. 

애플과 삼성의 소송 일지를 보면서 마사이족을 생각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 35만명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 부족이 개발도상국을 돕는 글로벌 비영리 단체들과 손잡고 자신의 이름에 대한 지적 재산권 보호에 나선다는 오래전(2013년) 소식을 떠올렸다. 국제 소송을 통해 마사이 이름을 무단 사용하는 기업들에 로열티 지급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신발, 자동차, 연필 등 마사이 이름을 딴 상품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재규어 랜드로버, 루이뷔통, 캘빈클라인, 마사이 베어풋 테크놀로지(MBT) 등 연간 1억달러 이상 벌어들이는 기업들도 널렸다. 마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1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소송이 성공한다면 마사이족은 연간 수천만달러의 로열티 수익으로 교육·의료 서비스 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쥐고 있고 이윤추구가 목적인 업계를 상대로 마사이족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 마음에서 승소 판결을 내리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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