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백석. 그의 절창 “흰 바람벽이 있어” 6행은 이렇다.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이 시어 중 ‘내’는 부사,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라는 뜻의 ‘내내’와 같은 말이다. 자신을 가리키는 명사 ‘내’는 단음(短音)이지만, 부사 ‘내’는 장음(長音)이다. 단어마다 강세가 있는 음절이 있다. 강세의 원칙 중 하나는, 장음 음절에 강세가 붙는다는 것. 따라서 이 시에서 부사 ‘내’는, 조금 올려서 살짝 길게 발음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가리키는 명사 ‘내’와 구분되어 ‘~하는 동안’이라는 본래 의미를 전할 수 있다. 소리와 뜻은 하나다.

음절은 그 길이와 높이에 따라, 어디서 띄어 읽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며, 리듬이 달라지기도 한다. 부사로서 ‘내’는, [‘내:]로 읽고 나서 포즈를 주어야 한다. 부사 다음엔 띄어읽는 것이 어법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내:]/가지가지#외로운 생각이/헤매인다”처럼 읽어야 한다. 글자 앞의 [‘]은 강세, ‘#’은 보통 띄기, ‘/’은 순간 띄기(=반포즈)부호다.

낭송하는 이가 대부분 ‘내’를 부사로서 ‘~하는 동안’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지 못하고 낭송한다. 엉뚱하게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뜻하는 명사 ‘나’에 관형격 조사 ‘의’가 결합하여 줄어든 말로서의 ‘내’라는 의미로 잘못 알고 낭송한다. 안타깝지만 아주 흔히 나타나는 오류다. 심지어 몇몇 낭송가는 제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신을 가리키는 액션을 취하기까지 한다. 물론 장음도 강세도 주지 않는다. 일인칭 대명사로서의 ‘내’는 장음이 아니므로 강세 역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는 시낭송에서 단지 단어 하나를 잘못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와  ‘내’ 앞뒤 단어의 포즈, 강세, 어조 그리고 리듬이 모두 왜곡될 수밖에 없다. 

백석 연구자 고형진이 엮은 《정본 백석 시집》(2008)에도 “생각하는 내”를 “생각하는 동안”, 이라고 풀어놓았다. 고형진은 백석의 시어 분류 사전인 《백석 시의 물명고(物名攷)》와 같이 백석과 관련한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백석 시의 시어에 나타난 모음 첨가현상과 시적 효과”를 비롯해 많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신주철의 《만주생활과 ‘힌 바람벽이 있어’의 의미》(우리문학연구 25, 2008)에도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떠오른 갖가지 외로운 상념들도……” 백석 시의 시적 화자는, 감주(=식혜)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안’, ‘내내’ 여러 가지 외로운 생각이 뒤섞이며 떠올랐던 것이다.

낭송에서 ‘내’의 오류는, 크나큰 헛발질이다. 낭송가가 대부분 틀리게 읽는다. 게다가 자신을 가리키는 몸짓까지 더할 때는 참으로 곤혹스럽다. 치명적이다. 이러한 오류는 시낭송 강사가 제대로 가르치고, 대회의 심사 기준을 바로 세울 때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어 시간에 문법만 치중할 게 아니라, 어법 지도에도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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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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