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하면 흑백 사진은 10초 안에, 컬러 사진은 1분 안에 볼 수 있는 시대다. 카메라 안에 필름과 현상할 수 있는 화학 약품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와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을 구경하려면 필름 한 통을 모두 찍고 적어도 이삼 일을 기다려야 했다. 사진관에 가서 인화할 필름을 맡길 때는 필름의 프레임마다 필요한 매수를 색연필로 표기해 건넸고 사진관을 나오면서 하는 말도 똑같았다. “빨리 좀 해주세요….” 

바로 전날까지 그렇게 돌아갔던 세상이었는데 어느 날 눈 뜨고 맞은 세상에서는 구석구석 QSS((quick service system, 즉석사진인화)라는 사진 출력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골목을 휩쓰는 ‘QSS 컬러 현상 17분 완성’의 광풍에 어지러운 것도 잠시, 세상은 어느새 ‘총알’ 같은 즉석 자동 현상 인화 서비스에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얼마 후 (서)독일로 유학을 가게 됐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 인화를 요청할 때면 ‘유광, 무광’을 선택해야 했고 이삼 일을 기다려야 했다. 현재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버리고 과거의 부족함과 불편함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러던 차에 고국에서 맛봤던 ‘QSS 컬러 현상 17분 완성’이 독일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독일에 정착하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사진관 운영자들과 시민들의 준법 저항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조직적으로 몰려와 사진 필름 현상을 맡겨 놓고 ‘17분 완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허위 과장 광고’로 법적 조치를 취하며 저항한 결과였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복지는 에덴에 가까웠고 그 동산엔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온 국민이 ‘바람이 불면 에덴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바람은 곧 속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트렌드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빠른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이다. 한 조직에 매여 일하던 전통적인 노동 문화의 경계가 흐려지고, 노동자는 여러 고용주에게 대가를 받으며 일한다. 업계는 일반인들의 ‘투잡 알바’를 활용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틈새’라고 생각한다. 그 전형적인 영역이 택배 시장이다. 

현재 택배 시장의 새로운 흐름은 ‘새벽 배송’이다. 배송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업계의 노력과 그날의 배송 할당량을 받아 처리한 뒤 정해진 수수료를 받는 유연한 노동 형태를 선호하는 노동자의 욕구가 만나 형성된 시장이다. 2015년 처음 등장한 ‘새벽 배송’은 30~40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날그날 필요한 물품만 소량 구입해 소비하는 트렌드로 인해 2015년 100억 원대에 머물렀던 신선제품 새벽 배송 시장 규모는 2018년 4천억 원대로 불어났다.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택배노동자들은 ‘새벽이 없는 삶’을 선택하면서 위험에 노출되고, 업계가 ‘총알’ 배송을 내걸고 경쟁에 뛰어들면서 그곳 역시 식인 상어가 지배하는 ‘레드오션’이 되어버렸다. 결국 거대한 유통망과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등에 업은 유통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골목상권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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