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이야기 ] 봄이 지나는 길목에서 듣는 니콜로 파가니니 무반주 바이올린
[나의 음악이야기 ] 봄이 지나는 길목에서 듣는 니콜로 파가니니 무반주 바이올린
  •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 승인 201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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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겨울에는 잎 떨군 나무들도 오솔하게 추워 보이지만 이 곳 산골에서는 벼를 베어낸 빈 들이 가장 춥다. 

겨우 내 차가운 바람이 종횡무진 달리기를 하고 이른 아침이면 빈 몸 가득 눈 시린 서릿발이 성성하게 피어 그리도 춥더니,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가장 추운 곳에 내리는 햇살이 가장 따뜻하다. 딱딱하게 얼어있던 땅들을 비집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건 꽃다지, 냉이 같이 작은 들풀이다. 그 작은 움직임이 온 땅 가득 들썩거리며 균열을 만들어야 그 틈으로 봄눈이 내려 스며들겠지. 그러면서 딱딱했던 대지가 말랑해지고 비로소 만물이 생명을 얻어 여러 가지 빛깔로 돋아나는 거겠지. 

모내기 전 물 대듯 들어찬 햇살이 찰랑 거리는, 아직은 비어있는 너른 논 풍경이 창문 밖에서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조반을 준비하는 아침. 라디오에서 아주 어울리는 음악이 선곡되어 곁을 지난다.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무반주 바이올린 카프리치오 24번. 반주가 없어 얼핏 건조하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맨 살에 와 닿는 보들한 감촉처럼 자기만의 음색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무반주의 선율은 들을수록 좋다. 봄 햇살처럼 거침없이 쏟아지는 도입부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생기 있는 초록빛깔. 그렇지만 그 속에 꽃샘추위처럼 아릿한 단조의 우수어린 느낌이 깃들어 묘한 싱숭생숭함을 전달하는 매력이 있으니 봄이 스멀스멀 오르는 저 메말라 보이는 들판에 이보다 더 좋은 음악이 어디 있으랴! 

악마의 화신이라 불렸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그의 현란한 기교와 뛰어난 음악성에 사람들은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연주력을 얻었다고 쑥덕거렸지만 그만큼 그의 연주에 기절할 만큼 열광적인 팬들도 많았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도 잠시 보여주었듯이 현이 끊어져 한 줄이 되든 두 줄이 되든 그의 연주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하니 그의 천재성을 조금 짐작은 하겠다. 

그런데 이 괴팍한 연주자는 자기의 연주비법을 비밀에 붙이고 제자도 딱 한 명뿐이라서 그의 주법이 체계적으로 전수되지 못했다고 하니 참으로 고약한 성격에 퍽이나 괴이한 인물이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겉으로 보여주었던 표면적인 삶이 아닌 그의 음악 같은 또 다른 사람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표현 할 수 없었던, 자기만의 언어로 섬처럼 살다 갔을 또 다른 한 사람. 그 음악이 그렇게 아름다운데 그 사람이 어찌 아름답지 않았을까.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내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니까.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곡은 무척 현란하고 다채롭다. 여러 가지 연주기교를 다양하게 구사하여 곡예적 연주법을 창조한 그가 생전에 작곡하여 남긴 것은 바이올린 곡뿐이다.  

카프리치오 스물네 곡 중 마지막 작품인 24번곡이 연주된다. 안되겠다. 이어폰을 꽂고 제대로 듣기로 한다. 눈을 감는다. 어제 오후, 고개 들어 올려다 본 느티나무 새잎이 하도 간질거려 하늘이 가렵겠다고 생각했다. 그 느낌이 부드러운 선율로 흐르고, 이제 막 봉오리가 터져 만개하는 벚꽃의 개화가 피치카토(Pizzicato·손가락으로 현을 튕겨서 내는 소리)로 경쾌하게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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