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첫 구정, 설날이 돌아왔다. 고향으로 귀농해 엄마의 옆 동네 살던 큰오빠는 아버지의 빈자릴 채우려 많이 노력했다. 혼자되시고 적적해 하는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노인대학과 미장원을 모셔다 드리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웠다. 누나와 동생들에게도 아버지 살아생전처럼 나물을 보냈고 고향집 방문 때마다 늘 먹던 음식들을 한상 가득 차려주었다.

그런 큰오빠에게 설을 며칠 앞두고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살얼음 깔린 도로에서 미끄러져 오빠의 차가 전봇대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전봇대가 쓰러질 만큼의 사고였다. 차는 폐차를 했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사고 이틀 후이자 명절 2일 전, 오빠는 갑작스런 통증과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사고 후유증이겠거니 하고 근육이완제와 소화제를 복용했다. 그러나 장 어딘가에서 막혀 먹은 음식은 내려가지도, 올라오지도 못하고 뱃속을 괴롭혔다.

교통사고는 3일을 지켜봐야 한다는 말의 진가를 깨닫고 호전되길 기다렸지만 배가 심하게 부어오르고 열도 나자 명절 다음날 새벽 응급실로 향했다. 잠귀가 예민하고 전날 술을 마시지 않은 내가 어둔 새벽길을 운전하고 큰언니가 동행했다.

한 시간 거리인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교통사고 응급 환자로 접수된 오빠는 각종 검사를 실시했다. 담당의는 여기저기 만져보고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염증 수치가 높네요. 사고 시 안전벨트가 눌려 장이 손상됐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CT 사진과 외진으로 봤을 땐…,”

조금 자신 없는 말투였다. “맹장일수도…, 오비이락처럼….”

나는 오비이락이라는 말을 얼버무리는 그의 말꼬리를 잡았다.

“4일전 사고가 크게 났어요. 전봇대가 넘어갔다고요. 이제야 후유증이 나는데 장파열일 경우 상황이 심각해지나요?” 

“그럼 장의 일부분을 제거하고 이어야 할 수도 있어요. 일단 당장 개복수술로 장 주위 오염도를 봐서 결정할 문제인데 만약 맹장이라면…,”

장 어느 부위가 파열됐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 큰 수술이 될 건 뻔했다. 우린 교통사고 환자에게 맹장을 이야기하는 의사 자질이 의심스러웠지만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믿고 맡겼다. 심각성을 감지한 오빠의 얼굴은 사색이 됐고 눈물이 흘러 새언니와 아이들에게 통화조차 못했다. 

빠르게 진행된 수술. 두 시간여 만에 문을 열고 나온 의사가 가족들에게 던진 말은 

“맹장입니다.”

“아니, 사고가…”

“오비이락이라고요!”

짧은 정적 후 가족들은 안도했지만 그간 행적이 우스웠다. 근육이완제에 배 마사지. 혈액순환을 해야 한다며 뜬 부황. 진척이 없자 장 파열로 진단한 어설픈 가족들. 의사가 말하는 맹장가능성을 묵살한 나.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집에 갈 때 오빠가 보여준 맹장 수술 정도 이상의 큰 수술자국을 보면 왠지 조금은 미안하다. 

시골에서 오빠는 다시금 봄 농사로 바쁘다. 고로쇠물을 받고 더덕 캐고 엄마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드라마 보다가 졸고. 아버지 역을 하는 오빠가 고맙다. 수술 후 오빠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나 뭐라나….

정리=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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