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부활절 직전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는 성주간이던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 정문 앞에서는 한 아빠가 어린 딸의 양손을 붙잡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비행기를 태우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보수 공사 중이던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96m 높이의 첨탑과 지붕이 화염에 무너져 내렸다. 

스테인드글라스 ‘장미 창’과 가시면류관, 8천 개가 넘는 파이프로 된 오르간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는 소식 등이 속속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일부 중국인들은 프랑스와 영국이 1860년 10월, 2차 아편전쟁 당시 황제의 여름 궁전인 원명원(圓明園)을 방화하고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해간 사건을 떠올리며 고소해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위해 국제적 모금을 진행하겠다는 소식에는 한국인이 발끈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 의궤 등 제3세계 문화재 약탈국가가 할 말은 아닌, 그야말로 ‘창조경제’라고 칭송하며 조롱했다.

화재 다음 날  장-자크 아야공(Jean-Jacques Aillagon) 전 문화부 장관은 “노트르담 재건을 위한 기부엔 특별히 세액 90%를 감면해 줄 것을 의회에 제안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프랑스 자산 순위 2위인 케어링 그룹(Kering; Balenciaga, Yves Saint Laurent 등)의 피노(Pinault) 일가가 1억유로(1천300억원)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최고 부자인 LVMH(Celine, Dior, Givenchy, Louis Vuitton 등)의 아르노(Arnault) 일가는 2억유로(2천600억원)를 내놓았고 화장품 기업 로레알(L’Oreal)의 메이예(Meyer) 일가도 2억유로를 약속했다.

경쟁적으로 이어진 거액 성금 행렬은 하루 만에 8억8천만 유로(1조1천억원)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던 대성당의 복원사업의 기간과 비용은 10년, 10억 유로(1조3천억원)였다. 예상 복구자금이 단 하루만에 모금된 기적 앞에서 노숙인들을 돕는 ‘피에르신부재단’은 좌절하듯 트위터에 적었다. “당신들이 성당을 위해 기부한 돈의 1%만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부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성당 복구를 위해 거액의 성금을 마치 커피 값 치르듯 쾌척하는 부자와 기업들을 목격한 ‘노란 조끼’ 시위대는 바스티유 광장과 공화국 광장에 모여 “노트르담에는 모든 것을, 불쌍한 이들(les miserables)에게는 무엇을?”이라고 외치며 분노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유류세 인하 등 서민경제 개선과 불평등 완화 요구를 무시했던 정부와 조세회피를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자와 기업들이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대성당 화재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브라질 국민은 자국의 비슷한 상황, 다른 전개에 경악했다. 지난해 9월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남미 최대의 자연사 박물관인 리우 국립박물관에 불이나 유물 2천만 점 가운데 약 90%가 타버렸고, 정부가 추산한 복원 비용은 최소 290억원이었다.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약 1%인 3억원이 모금되었는데 그것도 90%는 영국과 독일 등 해외로부터 왔고 브라질 기업과 부자들이 기부한 액수는 겨우 3천만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의 한 부자가 저 멀리 바다 건너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복원에 써 달라며 255억원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이모저모로 계급갈등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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