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민(民)의 축제에 이제는 정부가 화답해야 할 때
[기자의 눈] 민(民)의 축제에 이제는 정부가 화답해야 할 때
  • 유용준 기자
  • 승인 2019.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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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준 기자
유용준 기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장벽의 붕괴를 목도한 전 세계 사람들은 마치 독일의 통일이라도 본 것처럼 환호했다.

그러나 사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 통일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단순한 해프닝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1990년 10월 3일 이루어졌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중앙위원회 정보담당 서기 귄터 샤보브스키(Günter Schabowski)가 ‘여행 허가에 관한 출국 규제 완화’에 대한 법령을 ‘베를린 장벽을 포함하여 모든 국경 통과 지점에서 출국이 인정되는 것’으로 잘못 발표했고, 그 발효시점 또한 ‘지금 즉시’라고 발표함으로써 이에 고무된 동베를린 주민들이 국경 수비대의 통제를 거부하고 장벽 앞으로 몰려가 장벽을 무너뜨린 것, 이것이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의 본질이었다.

동독 정부가 여행 자유화 법령을 발표하려한 것은 당시 동유럽에 거세게 몰아쳤던 자유화·민주화 바람에 대한 일정부분의 수용은 맞지만 통일에 대한 내용은 결코 아니었기에 무너진 장벽은 원상복구되고 법령안은 원래대로 추진될 수도 있었다. 사실 베를린 장벽이 공식적으로 철거된 것도 1990년 6월의 일로서, ‘그날 저녁’ 무너진 장벽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독 정부는 장벽 붕괴 이후, 통일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새로운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프는 정치·경제·사회적인 개혁을 실시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1990년 3월에는 동독 최초로 자유선거가 실시됐고 이 선거로 새로 구성된 동독 정부는 같은해 8월 독일 통일에 동의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 통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셈이다.

1989년 동독 주민들이 그러했듯, 30년 후 4월 27일 DMZ에 모인 사람들 역시 한반도 평화정착의 시작을 알렸다. 이제 민(民)의 역할은 다했다. 준비 과정에서 미흡한 점도 있었고, 분단의 장벽 500Km를 한 줄의 인간띠로 다 이은 것도 아니지만 강원지역본부 김복기 홍보위원의 말처럼 “일을 시작하고 추진한 것, 그리고 사람들이 DMZ에 모인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독일 정부가 그러했듯 우리 정부가 민의 마음을 읽고, 나서야 할 때다. 지난해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1년 동안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던 것은 정부가 분명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통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어려울 수 있다. 또 신중해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전(終戰)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많다. 아무리 북미 관계가 얼어붙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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