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1499년 남미 대륙을 항해하던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거대한 호수를 만난다. 호숫가에 점점이 떠 있는 원주민들의 수상가옥을 보고 베네치아(Venezia)의 풍경을 떠올린 그는 베네수엘라(Venezuela)라고 이름 지었다.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이다. 그가 마주했던 호수는 마라카이보(Maracaibo Lake)였다. 1922년 마라카이보 호수의 한 시추공에서 거대한 기름 줄기가 솟아오르면서 베네수엘라는 가난한 농업국에서 전 세계 석유생산량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탈바꿈한다. 국민들은 미국에 맞먹는 수준의 1인당 GDP를 자랑하며 석유로 인한 부를 누렸다. 주말이면 중산층이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로 장을 보러 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황금기는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의 2번째 집권 때 부정부패와 심각한 경제위기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1992년 2월 4일 새벽, 군인 차베스가 좌파 정치인들과 손 잡고 쿠데타를 시도하지만 사전 정보 누출로 실패한다. 감옥으로 이송되기 직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이여, 당신들이 원하던 혁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6년 후 벌어진 선거에서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14년 동안 장기집권 하던 차베스가 2013년 암으로 사망하자 측근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버스운전자와 노조 지도자 출신인 마두로는 차베스 정부에서 외무장관과 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차베스의 무상복지 정책의 달콤함을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지금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경제난과 불안한 치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경제의 90% 이상을 석유 수출에 의존하기에 유가 급등락에 취약한 경제구조지만 불황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탓이다. 유가가 곤두박질치고 경제가 얼어붙자 무상복지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고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살인 등 범죄로 민심은 흉흉해졌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인플레이션율은 169만8천488%. 올해는 1000만%에 이를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예상한다. 가히 ‘지구 궤도를 벗어날 정도로 치솟는 물가 수준’이다. 1년 전만 해도 0.8볼리바르이던 커피 한 잔 값은 2천800볼리바르로 3천5백배 오르고 연말이면 적어도 1만배로 치솟을 것이라고 한다. 전력 공급이 중단되거나 부분적으로 정전되는 사태로 인해 전 국토의 96%가 암흑세계로 변했다. 식량난, 식수난까지 겹치면서 지금까지 베네수엘라를 떠나는 난민 규모는 인구의 12%인 34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하루 평균 5천500명이 국경을 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을 따르는 국민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국민으로 나뉘어 4개월째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를 맞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50여개 나라는 과이도를, 러시아와 중국 등은 마두로를 각각 지지한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열강의 대리전 무대가 되어버렸다. 

사회주의 정권의 실정과 부패 위에 분열이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친미주의자.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적대적인 음모 탓이라고 주장하는 반미주의자.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정국에서 국민들의 몫은 고통뿐이다. 모든 권력다툼의 유일한 진실이다.

키워드
#베네주엘라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