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영화는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감각을 제한하는 장치를 사용한다. 우리의 감각을 제한하는 방식은 직유적이고 즉각적이다. 간접적이고 은유적으로 감각을 제한하려는 방법은 시간과 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동굴이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잠수함이나 고장으로 인해 우주에 머물러있는 우주선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시간과 공간을 제한하는 대표적 영화적 장치가 감옥이다. 감옥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몸을 제한하는 공간이고, 일정한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면에서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따라서 시간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장기수나 사형수를 소재로 다루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 집중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감옥영화가 범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목적으로 하거나, 일정 부분 사회에 순기능을 하겠다는 영상사회학적인 의무감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법의 숭고함이나 권력의 견고함을 떠받쳐주기 위해 감옥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아니다. 감옥은 압축적으로 아이콘화된 우리의 사회다. 복잡하고 뒤엉킨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죄수들의 폭동을 다룬 영화 <라스트 캐슬>(2002)에서 감시자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언급한 파놉티콘(Panopticon)을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죄수들이 감시공간의 한 가운데에 자신들의 안전한 공간을 세워가는 역설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캐슬(Castle)’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역설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한편 움베르토 에코의 제법 두툼한 소설 ≪장미의 이름≫과 동명의 영화 <장미의 이름>(1989)에서 어느 한 시대나 어떤 종교가 사람들을 감시하는 억압 기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푸코가 지목한 군대, 학교, 병원 또는 종교가 감옥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탈출은 감옥영화에서 또 다른 하나의 축이다. 탈출을 허용하는 경우는 <빠삐용>(1974)이나 <쇼생크 탈출>(1995)의 주인공처럼 억울하게 갇혔을 때이다. 대부분의 감옥 탈출 영화에서 주인공은 다시 붙잡혀 감옥으로 돌아온다. 탈출 시도했을 때와 다시 붙잡혀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더욱 세밀해져서 긴장감과 관심도가 증폭된다. 

영화 <폭주기관차>(1989)에서 보듯 주인공의 탈출 자체가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요 메시지가 아니다. 도주하는 동안 일어났던 인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그린 마일>(2000)처럼 감옥이란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예도 있다. 주인공에게 감옥 안과 밖은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영화는 그가 베푼 영향에 초점을 두었다. 결국, 감옥은 영화적 장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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