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역사문화연구회, ‘박사마을과 도포서원 고증’ 주제로
“복원된다면 활용성 높고 지역 문화, 역사, 경제에 기여할 것”

춘천의 스토리를 발굴하는 학술토론회가 ‘박사마을과 도포서원 고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 주최로 지난 17일 한림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사라지고 없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포서원의 건립 배경과 향후 복원 가능성을 논했다.

먼저 서원의 건립배경과 기능 및 역할에 대해 강원대학교 유재춘 교수가 발제했다.

서면 신매리에 있었던 도포서원은 춘천의 두 번째 서원으로 조선 중기 사대부의 학교였다.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지난 17일 한림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학술토론회를 열고 도포서원의 건립배경과 유적지, 향후 복원 가능성 등을 논했다.
서면 신매리에 있었던 도포서원은 춘천의 두 번째 서원으로 조선 중기 사대부의 학교였다.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지난 17일 한림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학술토론회를 열고 도포서원의 건립배경과 유적지, 향후 복원 가능성 등을 논했다.

조선시대 강원도지역에는 모두 17개소의 서원이 있었는데 이는 경상도의 1/10수준이었다. 서원은 공립학교와 대비되는 일종의 사립교육기관으로 사대부의 자녀들이 다닌 학교였다. 춘천에는 문암서원과(1648년) 도포서원(1650년)이 설립됐다. 현재의 대구 공산전투에서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되었을 때 태조를 피신시키고 대장이 되어 김락(金樂)과 싸우다 전사한 신숭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모시며 건립됐다. 또 조선중기 관료이자 저명한 문장가 ‘신흠’과 중기 문신 ‘김경직’도 함께 추가로 봉안했다. 도포서원은 비사액(왕으로부터 인가나 지원을 받지 못함)서원으로 재정이 모자라 규모를 제대로 갖추기 어려웠다.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폐철 되었으며 현재 서면 신매리에 서원 터가 있다. 

문암서원은 이황의 문인인 신식이 춘천부사로 오며 창건했고 퇴계 이황 등 남인계 인물들이 봉안됐다. 반면 도포서원은 서인 계통인 신흠과 김경직을 배향하여 계통이라 볼 수도 있지만 장절공 신숭겸이 신흠과 같은 집안 사람이기도 해 같은 당색이라 하기 어렵다. 

강연을 마무리 하며 유 교수는 “서원건물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복원한다면 활용성이 높고 지역 전통을 되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숭겸의 후손이며 강원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신대수 씨는 도포서원이 문화공간으로서 어떻게 인식돼 왔는지 알아보고 복원 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도포서원이 복원된다면 꼭 필요한 공간으로 제를 지낼 수 있는 배향공간과 강당과 같은 강학 공간이 함께 들어서 수학이라는 본래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포서원의 이야기가 풍부해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고 성재봉, 덕두원·현암리 태실, 홍일동 묘소, 월동리 3층석탑, 서상리 석탑, 신숭겸 묘소 등 주변의 뛰어난 경관과 문화유산들을 연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춘천시의회 윤채옥 의원은 박사마을의 도포서원과 고산은 큰 문화자산으로 활용가치가 있다고 제언했고 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권용범 운영위원장은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있는 관광도시 춘천을 바란다’는 주제로 자유토론을 펼쳤다.

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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