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월 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5·18 정신
[기고] 6월 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5·18 정신
  • 양희원 (강원대학생진보연합)
  • 승인 201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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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원 (강원대학생진보연합)
양희원 (강원대학생진보연합)

매해 5월이면 전국의 대학생들이 광주에 모여 ‘5월 정신 계승’과 ‘책임자 처벌’을 외친다. 강원대학생진보연합(이하 강진연) 역시 매해 5월이면 춘천지역의 대학생들과 함께 광주에 내려가, 망월묘역에서 5·18 당시와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돌아가신 열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짐을 하곤 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5월이 찾아왔다. 연초부터 5·18에 대한 각종 망언이 정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이번 5·18은 예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5·18 민중항쟁 39주년을 맞으면서는 현장에 계셨던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송희성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었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에는 YWCA에서 근무하고 계셨던 선생님은 광주민중항쟁의 생생한 목격자셨다.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했던 시민군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계엄군이 자택을 지나 전남도청을 향해가고 있을 때, 도청 안에 있는 이름과 얼굴까지 모두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죽어갈 생각에 너무나 두려우셨다는 이야기. 계엄군의 조명탄이 광주의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순간 시내에 울려퍼진 계엄군의 총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성경책과 찬송가집을 북북 찢으시며 오열하셨다는 이야기.

대학에 들어와 근현대사를 공부하며 들었던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에 ‘80년대 학번은 눈빛부터가 달랐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80년 광주의 참상을 목도한 당시 대학생들이 가슴 한 편에 광주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보안사에 끌려가 남편과 함께 온갖 고초를 겪으시고 아직까지도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송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지금까지 굳건히 싸움을 이어가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이 그저 감사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5월 18일이 지나간다고 해서 5·18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한 강진연의 행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왜곡저지라는 무수한 과제들이 남아있다. 특히나 전두환의 후예세력, 비호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지금 대학생들의 주된 과제이다. 5·18이 6월 항쟁의 마중물이 되고 촛불혁명으로까지 이어진 지금 이 순간, 남은 적폐청산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 대학생들도 책임감 있게 나서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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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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