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농민은 어떻게 놀까? 농촌에는 같이 놀 사람이 드물어진지 오래. 어울려 노는 것도 여의치 않다. 겨울날의 농민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요즘은 농한기도 따로 없고 갈수록 짧아진다. 사계절 노심초사 마음 바쁜 사람이 농민이다.

사실 농민은 수준 있게 논다. 농사일과 마찬가지로, 철 따라 하늘의 기운을 따라 논다. 새벽 서리를 기준으로 놀고, 비와 바람과 기온을 기준으로 논다. 그런 농민의 놀이가 민속놀이고 세시풍속이다. 농민은 곧 민중이었고 백성은 모두 농민이었다. 물론 옛날이야기다.

이제 농촌에는 척사(擲柶)대회 정도가 겨우 남았다. 정월대보름 지나 시끌벅적한 윷놀이 한판. 본격 농사를 앞두고 벌이는 놀이판이니, 사악한 것들을 물리치는 척사(斥邪)와도 의미가 상통한다. 강원도는 추워서 조금 늦게 좋은 날을 잡아서 윷을 던진다. 이제는 사라진 석전(石戰)의 추억을 들려주던 어르신의 무용담에 입이 벌어졌던 기억도 난다. 농촌공동체가 든든하던 시절 놀이는 버라이어티했고 다이나믹했으며 스케일도 컸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말은 놀이와 연관이 깊다. 음악과 사냥 같은 비싼 취미를 가진 한 제후가 맹자에게 묻는다. 백성들이 원망한다는 것은 알지만 도무지 끊지를 못하겠으니 어쩌면 좋겠냐고. 그러자 맹자는 실로 기상천외한 조언을 한다. 음악도 사냥도 계속 즐기라고. 그런데 놀고 즐기되 백성들과 함께 놀고 즐기라고. 그러면 잔치소리를 듣고 사냥행렬을 보더라도 “우리 제후께서 걱정도 없고 건강하신가 보다. 어쩌면 저렇게 북도 잘 치고 사냥도 용맹하게 잘 하실까?” 이럴 거란다.

맹자가 좀 허세가 심한 분이기는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떤 백성이 제후가 잔치 벌이고 사냥질하는데 손뼉치며 기뻐하겠는가? 여민동락은 맥락이 매우 중요한 말이다. 맹자가 제후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장면이라는 게 핵심이다. 질문한 제후가 아주 싹수가 없지는 않은 것 같았나 보다. 비난하고 나무라기보다는 제후의 기를 살려서 정치의 기본기를 가르치려는 것이 맹자의 의도다. 따로 놀지만 말고 백성과 함께 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역설하는 중이다. 

아무튼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으로 새기다보니 응용이 되기도 한다. 세종대왕 시절 지은 악곡의 제목은 여민락이었고, 오늘 청와대 참모들은 여민관에서 근무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민동락은 다분히 봉건적·권위적·시혜적인 권력자들의 슬로건이다. 엄연한 민주공화국인 지금 시대와는 들어맞지 않는다. 여민동락은 무슨, 민생은 늘 고달프다.

살기 좋고 살고 싶은 행복도시 스마일 춘천. 적폐 가득했던 예전의 춘천시정부는 마냥 웃자고 했다. 난데없이 뜬금없이 스마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다. 가끔 헛웃음은 났지만 그걸 바랐던 거냐? 지긋지긋한 레고랜드. 적폐의 반대편에 서 있노라 자처했던 강원도정부는 아예 대놓고 큰판 벌여 놀자고 했다. 멀쩡한 섬의 나무고 유적이고 다 뭉개면서 놀자고 한다. 그런데 노는 데는 세금이 하염없이 든단다. 시민이 싫다는데 봉건시대 제후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바야흐로 시민이 주인인 오늘의 춘천은? 시민들의 참여 기회를 넓혀가면서 다양한 창의성을 협동적으로 펼치도록 노력하는 방향은 좋다. 시대정신과도 잘 부합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개혁의 비전이나 청량감은 없다. 그래서 춘천의 주인들은 기대와 더불어 걱정도 한 보따리인 것이다. 

물론 고달픈 건 고달픈 것이고, 놀 때는 잘 놀고 싶다. 원 없이 지치도록 놀고도 싶다. 그렇다고 불꽃놀이 폭죽 수십억 터뜨려달라는 뜻은 아니다. 그걸 놀이랍시고 같이 놀자고 하는 구닥다리들 때문에 민생이 고달픈 것이다. 미세먼지가 더 날려서도 있지만, 개혁은 이번에도 틀렸나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려 고달픈 것이다. 

민생이 튼튼해지는 춘천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주인은 없다. 주인들은 춘천이 바로 잡히는 개혁의 길에서 고통을 함께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낡은 여민동락 말고 동고동락(同苦同樂)하고 싶은 것이다. 주인은 놀이보다 개혁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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