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대한민국과 삼성공화국
[월요편지] 대한민국과 삼성공화국
  • 이충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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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완전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이론적으로 가장 완전한 시장에 가깝도록 만든 시장이 주식시장이다. 모든 정보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어 경제학에서는 가장 완전한 시장에 가까운 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시장이다. 기업은 정기적으로 재무제표를 공개해 이익이나 손실이라는 민낯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여전히 금융과 자본시장의 선두를 지키고 있는 이면에는 완전 시장을 지키려는 혹독한 과정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사회적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2001년 미국 7대 기업에 속했던 엔론(Enron)은 1조 5천억 원대의 회계 사기(accounting fraud)를 저질렀다가 파산했고 CEO인 제프 스킬링(Jeffrey Skilling)은 24년 4개월의 징역형과 함께 1천800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빚을 숨기고 번 돈을 늘리면서 10억 달러가 넘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 LLP)은 해체됐다. 2008년 최대 50억 달러의 손실규모를 10억 달러로 축소했던 AIG의 회계 사기에 대해서 미국 검찰은 임원에게 230년의 징역형과 500억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그런 사기행위가 대한민국에서는 분식회계라는 순화된 이름으로 불린다. 분식(粉飾)은 일본에서 수입된 말로 문자 그대로는 ‘분가루로 꾸미다’라는 뜻이다. 내용이나 실속 없이 겉만 그럴싸하고 보기 좋게 꾸미거나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고 사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꾸몄다는 의미다. 

회계는 여러 사람이 모여(會) 계산(計)해서 만들어진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회계를 정치적 책임성과 연결시켰고, 공적 감사시스템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신성한 국고(國庫)는 델로스 섬에서 회계 담당자의 감시 아래 관리되었다. 국가에 재산 내역을 신고하지 않은 시민은 해외로 나갈 수도, 신전에 재산을 바칠 수도, 유언장을 작성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정교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는 부패가 만연했다. 이익에 눈먼 사람들끼리라면 공모가 가능한 영역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랬을까, 어느 정도 기만행위를 예측하고 용인했으며 심지어 공격적인 감사를 도시국가의 현상 유지에 위협 요소로 간주하기도 했다.

회계 장부에 분칠을 했다는 것은 이익을 줄이거나 부풀리거나 둘 중 하나다. 이익을 줄였다는 것은 탈세가 목적이고, 이익을 부풀렸다는 것은 은행 대출을 쉽게 받고 또한 대출을 받더라도 낮은 이자율로 받는 걸 겨냥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행태는 회사의 손익과 연결되어 주식시장 참여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윗선’의 지시로 증거인멸을 했다고 진술했다. 금융당국의 발표로 드러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규모는 4조5천억원에 이른다. 기업의 덩치로 보면 엔론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회사이지만 사기 규모로 보면 엔론의 3배 수준이다. 고의 분식회계가 수면 위로 드러날 즈음 그들은 공장 마룻바닥을 뜯어 회사의 서버와 노트북 수십 개를 숨겨 놓기까지 했다. 이런 악질적 회계 사기가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가중 처벌이 더해져 CEO는 최소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삼성과 청와대의 부당거래, 국민연금을 동원한 경제 질서 교란과 얽혀있다. 이런 정경유착과 부패의 고리를 단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호를 삼성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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