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감독의 영화 생존기] 한국영화 100년 최초의 극장 단성사
[촬영감독의 영화 생존기] 한국영화 100년 최초의 극장 단성사
  • 김성태 (강원영상위원회 사무국장)
  • 승인 201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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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강원영상위원회 사무국장)
김성태 (강원영상위원회 사무국장)

1907년 서울 종로3가에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인 단성사가 개관했다. 초기의 단성사는 우리나라 창·판소리 등 전통연희를 올리던 공연 공간이었지만 1919년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투’를 상영하면서 단성사는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리고 1926년 나운규 감독의 민족영화 ‘아리랑’을 개봉하면서 단성사는 당시 시대적 아픔을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큰 위안을 주었으며 한국인을 위한 극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독립의 감격과 민족의 고통인 한국전쟁 그리고 아픈 성장통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종로3가부터 을지로3가와 충무로 일대는 단성사를 시작으로 피카디리, 명보, 서울, 국도, 중앙, 스카라, 대한극장 등 많은 극장들이 생기면서 영화관의 거리로 조성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많은 위로와 휴식, 꿈, 추억, 낭만 등을 선사했다. 

영화거리는 중학생이던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과 꿈을 만나게 해주었다. 1986년 겨울 우연히 얻은 극장초대권을 들고 종로3가로 나갔다. 날씨가 무척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극장가는 ‘백 투 더 퓨처’, ‘람보’, ‘로키4’, ‘구니스’ 등을 앞세운 미국영화와 성룡, 홍금보, 원표 트리오의 코믹 액션 활극이 점령하고 있었고 나 또한 이런 영화들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하지만 이날 내 손에 쥐어준 초대권에는 낯선 제목이 적혀 있었다. ‘아마데우스’. 나는 초대권을 보자마자 제목조차 재미없다고 느꼈다. 지금은 매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수준 높은 클래식으로 귀 호강을 하고 있지만 당시 나는 클래식은 지루한 음악이라고 생각해 듣지도 않았었다. 

그럼에도 문화중심지, 영화의 거리로 나간다는 기쁨이 컸기 때문에 지루함을 참기로 하고 묵묵히 어두운 대한극장에 앉아 있었다. 요즘 스크린 독과점 이슈의 중심에 있는 ‘어벤저스 엔드 게임’과 러닝타임이 비슷한 3시간짜리 영화, ‘아마데우스’는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며 영화를 오락으로만 여겼던 나에게 영화를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영화는 그려지는 문학이며, 영화는 움직이는 명화이고, 영화는 보는 음악이라는 것을 어두운 극장에 앉아 있는 중학생인 나에게 ‘아마데우스’는 말하고 있었다. 나의 가슴에서는영화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작은 불씨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커져 갔다.

매일 아침 걸어서 출근을 한다. 출근길에 마주하는 육림극장은 영화인으로 살아온 나에겐 마음의 응어리다. 1967년에 상영을 시작해 40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꿈을 주었을 육림극장은 현재 반 토막이 잘려나간 모습으로 육림고개 앞을 지키고 있다. 서울은 현대화와 발전이라는 과제 앞에 영화 역사와 문화의 공간을 단 한 곳도 지키지 못했다. 진정한 문화의 도시를 꿈꾸는 춘천이 서울을 흉내 내 경제적 논리 앞에 문화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문화는 과거를 삭제하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안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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