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시인)
금시아(시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는 2010년에 개봉되었다. 그때는 영화 속을 흐르는 다른 스토리로 인해 정작 양미자는 놓쳤던 것 같다. 영화 ‘시’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주인공 양미자를 해체하여 들뢰즈의 ‘되기’ 개념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영화는 시간-이미지를 통해 창조된 사유-이미지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순간의 시뮬라르크(가상 거짓 등을 뜻하는 철학 용어)를 유효하다고 봤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시’에서 양미자를 통해 들뢰즈 미학의 ‘되기’를 추구한다. “시상은 언제 찾아와요?” “어디로 찾아가요?” 그녀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은 점점 ‘되기’로 나아간다. 그녀는 ‘닮는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녀의 목표 또한 유사성도 모방도 동일화도 아닌 스스로 추구하는 새로운 지도의 제작, 곧 생성이다. 이 생성은 꿈도 환상도 아닌 온전히 실재적인 것이다.

영화 ‘시’는 들뢰즈의 철학 ‘강렬하게-되기’ 개념의 표출이다. 관념은 죽지 않으며 항상 다시 사용된다. 꿈, 상징, 예술이나 시, 그리고 실천과 실천적 활용의 대상은 모두 다른 현재적 양태다. 양미자는 65세로 혼자된 딸의 아들을 키우며 간병인 생활을 하고 있다. 어려운 일임에도 그녀의 성격은 밝고 긍정적이다. ‘당신도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화원 안내장은 치매 초기 증상인 그녀의 가슴에 큐피드 화살을 쏘았다. 그녀는 본다. 시를 쓰기 위해서 관찰하고 골똘하며 보는 것에 자신의 온 ‘감각’을 몰입시킨다.

들뢰즈는 신체의 코기토, 즉 지각과는 다른 ‘감각’의 존재를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감각’은 감각기관을 통해 직접 몸으로 내려가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모자를 날리고 강가 모래밭을 거닐던 양미자, 수첩을 꺼낸다. 빈 수첩에 빗방울 하나 떨어진다. 빗방울이 시를 쓴다.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발, 그 무수한 파문은 감각이 ‘세상에 있음’이다. 시를 찾는 모든 행위는 바로 ‘감각’이다. 그녀의 시는 인식이 아니라 욕망이며 욕망은 그녀 자체의 존재방식이다.

양미자의 시 쓰기는 소녀의 죽음에서 비밀수호 역할을 맡는다. 비밀은 특정한 내용과 관련지어진다. 죽은 소녀와 범행 공범자인 손자 종욱 사이의 비밀은 집단적 배치물이고 사회에 의해 발명된 사회적인, 사회학적인 관념물이다. 희진 엄마를 찾아간 이유를 깜빡 잊고 돌아온 그녀의 양심과 용서는 시와 연결고리를 생성한다. 양미자는 범죄를 저지른 손주의 합의금 마련을 위해 간병하는 노인의 돈을 욕망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주는 것(플라톤의 에로스)’을 주고 돈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는 손자를 경찰에게 넘긴다. 관념의 유동이다. 손자 종욱이에게 적용된 들뢰즈의 ‘동물-되기’ 개념으로의 이동이다. 비밀은 또 하나의 생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때 생성된 비밀 또한 관념이 아니다. 

시는 욕망의 표현이다. 아니, ‘강열하게-되기’의 실천이자 확장이다. 우리들의 사랑, 배려, 노력, 긍정 모두 ‘되기’ 위한 실천인 것이다. 종종 망각되거나 드러나지 않는 실제적인 욕망의 생성은 언제나 쓰라린 중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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