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바람이 분다. 애기 연두빛깔을 키운 오뉴월의 햇살이 바람에 날려 천지가 온통 초록으로 흔들린다.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온다. 이 단순한 명제가 어쩌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사의 기본 바탕이 아닐까. 계절이 흐르는 초록 그늘에 앉으니 바람이 슬쩍 말을 걸어온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도 그 옛날 이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을까? 문득 그의 프렐류드(prelude: 전주곡)가 생각난다. 작곡가 바흐가 아주 단순한 화음으로 음을 구슬처럼 꿰어 목걸이를 만들 듯 아르페지오로 펼쳐놓은 음악. 평균율 클라비어(Klavier)곡이라는 제목처럼 음의 길이를 똑같이 나누어서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나열해 놓은 직각모양의 곡을 말랑하게 음악적으로 연주해야하니, 아주 단순하고 무척 짧은 이 곡이 사실은 피아니스트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래도 그 어려운 음악을 멋지게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있어 우리가 감상 할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맙다. 연주시간이 2분정도여서 부담 없이 듣기에도 좋다.

어느 날 친구가 카톡으로 바흐의 프렐류드 C장조를 보내왔다.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는 어떻게 여기에 이런 가락을 얹을 생각을 했을까? 정말 기가 막히지 않아?” 그리고 바로 이어서 보내온 음악이 구노의 아베마리아였다. 구노가 작곡한 아베마리아는 반주로 흐르는 음악이 바흐의 프렐류드 C장조다. 정말 멋진 창작물이다. 

원래 작곡가 샤를 구노가 바흐의 프렐류드를 연주하다가 자기의 연인에게 주고 싶은 가락이 떠올라 바흐의 음악위에 이 선율을 작곡했다고 하니 그 멜로디가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쩌다 연인이 마리아로 바뀌어 세속에서 성스러움으로 변한 음악. 하긴 바흐의 모든 음악은 신께 드리는 고백 같은 음악이었고 구노 또한 종교음악에 심취했던 작곡가였으니 바흐의 선율에 얹은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어쩌면 찰떡궁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제목을 바흐-구노의 아베마리아로 표기한다. 

아베마리아는 성악곡이라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버전도 있고 유명한 가수들이 부른 음반들도 많이 있지만 이상하게 가사가 붙은 노래가 얹히면 반주가 잘 들리지 않는다. 바흐의 프렐류드 위에 나붓하게 얹혀, 바흐의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구노의 선율, 그 느낌이 살아있는 요요마의 첼로 버전을 권하는 이유다.

초록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무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소리, 새소리가 날아들어 그 소리들이 많은 생각으로 혼탁해진 마음을 만져주고는 잡스러운 것들을 털어 낸다.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그 음악을 나는 하나님의 음악이라 부른다. 그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모든 음악적 영감을 신께 드렸던 사람의 음악을 생각한다.

계절이 지나는 곳곳에 풍경처럼 스치는 음악. 잠시 기대어 쉬어보면 어떨까?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렵다면 가장 어려운 것이 가장 단순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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